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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Oct 01. 2020

남자들이 목욕탕에 가는 이유

목욕탕 예찬-1

언제부턴가 목욕탕 가는 걸 즐기게 되었다. 뜨거운 김이 나는 온탕에 들어가 '으어 시워어어어언하다'를 외치는 그런 아저씨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런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대중목욕탕. 그 습한 냄새와 분위기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온수가 귀한 집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때를 자주 미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목욕탕 가고 싶은 욕구는 꼭 목욕탕에 가야만 해결이 된다.


나는 왜 목욕탕을 좋아하는 걸까?


하루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탕에 몸을 담그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발가벗은 남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그들은 바쁘게 뛰어 다니지도, 급하게 전화를 받지도, 경적을 울리지도 않았다. 모두 편한 얼굴을 하고 온탕에 몸을 담그거나 때를 밀거나 비누 거품을 걷어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들은 어쩌면 태초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어떤 지위와 직함을 가졌는지, 비싼 옷이나 시계를 가졌는지, 좋은 차를 타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계급장도 이름표도 명함도 없는 곳. 그곳이 목욕탕이었다.


그제야 내가 목욕탕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만나는 곳. 모두가 동등해지는 곳.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부각되는 곳.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


그 목욕탕에 다시 가고 싶다. 그 습한 기운과 벌거벗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다. 회사를 땡땡이치고 목욕탕에 가는 어느 드라마 속 장면처럼, 그 어떤 권력 조차 허락되지 않는 온도에 나를 맡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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