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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30. 2020

엄지 손가락만 한 벌이 들어왔다

점심을 먹는데, 열어 놓은 거실 창으로 벌이 들어왔다. 엄지 손가락만 한 꽤 큰 벌이었다. 호들갑 떨 필요도 없이 열어 놓은 거실 창을 그대로 열어두었다.


벌은 거실을 한 바퀴 비행하더니 거실 창에 붙었다. 창에 붙어서 창 밖을, 자신이 날아왔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을까? 지금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차려놓은 점심을 마저 먹었다. 알아서 잘 나가겠지. 한 치의 동요 없이 밥을 떴다. 입은 오물거렸지만 눈은 녀석을 향하고 있었다.






콩콩콩. 수줍게 거실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녀석이 만드는 소리였다. 곤충 치고 큰 몸집을 창문에 부딪혀 콩콩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실 창에 붙어 바깥으로 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 편의 곤충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투명한 창문 너머 세상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벌 한 마리.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세상 때문에 애를 태우는 작은 미물. 그 미물은 계속 콩콩 거렸다.


“저 녀석 스스로에겐 콩콩이 아니라 쾅쾅, 그 이상의 울림이겠지.”


벌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 처음엔 작은 진동만 울릴 뿐이었다. 근데 재밌게도, 그 미물은 열어놓은 문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제자리 박치기가 아니었다. 바람 냄새가 나는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기며 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을 남겨둔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멀리 식탁에 앉아 벌이 목표 지점까지 다가가는 걸 지켜봤다.


“조금만 더 힘내. 조금만 더!”


마침내 녀석은, 열어놓은 창문 근처에 거의 도달했다. 그런데 벌은 바깥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다시 내려앉았다. 다시 창에 붙었다. 포기하는 건가 싶었다. 고지가 코 앞인데 목표 지점이 바로 앞에 있는데.


부웅. 다행히 벌은 잘 날아갔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녀석은 세상을 향해 자유를 찾아 날아갔다. 난 흐뭇한 마음으로 마지막 밥을 떴다.






나는 지금, 벌이다.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는 작은 미물. 목표 지점까지 가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 녀석.


결국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꽤 고통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했을 것이다. 언제쯤 내가 원하는 곳에 이를 수 있을까? 끝이 있긴 한 걸까? 과연 살아나갈 수 있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 결국 세상 밖으로 향하기까지 그는 머리가 꽤 아팠을 것이다. 


벌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목표에 다가가고 있었음을.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음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누군가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작지만 꾸준히,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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