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종소리 대신 쓰는 글
슬쩍 달력을 올라다봤다. 나는 이 원고를 2015년 마지막 날에 쓰고 있다. 오늘 자정, 서울 종로의 보신각 종소리는 어김없이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타고 전국에 울려 퍼질 것이다. -이기주 저서 <언어의 온도> 중에서
슬쩍 안경을 고쳐썼다. 나는 이 글을 2019년 마지막 날에 쓰고 있다. 오늘 자정, 보신각 타종은 어김없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난 보지 않을 것이다. 매년 보았고, 매년 남는 게 없었다. 오히려 종소리와 함께 들이킨 맥주 한 모금이 새해의 시작을 더부룩하게 만들었다.
방송국 아나운서는 "2015년이 저물어 갑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허무하기도 하네요"라는 상투적인 멘트로 방송을 시작할 테고, 라디오에선 "해가 저무는 끝자락에선 지난 일 년을 돌아보는 게 어떨까요…"라는 클로징 멘트로 끝을 맺을 것이 분명하다. -위와 같은 책에서
방송국 아나운서는 수많은 인파를 배경으로 상투적인 진행을 할 테고, 라디오에선 비슷하게 상투적인 클로징 멘트가 흘러나올 게 분명하다. 뻔할 게 분명하기에 더더욱 보지 않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 때의 허무함은 12월 내내 느끼고 있었다. 이미 지난해를 돌아보았다. 내겐 2020년이 온 거나 다름없다. 몇 시간 안 남은 2019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지금 난, 뻔한 클로징 멘트를 대신할 새해 오프닝 멘트를 쓰고 있다.
이 정도면 애썼다고, 잘 버텼다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러면서 슬쩍 한 해를 음미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내다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역시 같은 책에서
이 정도면 너무 갖다 썼다고, 잘 베꼈다고, 인용이 지나치다고 이기주 작가가 싫어하려나. 그러면서 슬쩍 이기주 작가의 나의 워너비(wannabe)임을 어필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기주 작가는 2015년의 마지막 날, 위의 원고를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2015년의 글이 2019년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걸 예상했을까. 그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어떤 심정으로 마무리했을까. 불안하진 않았을까.
몇 년 뒤 지금 이 글은 누구에게 읽히게 될까. 레전드가 될까, 흑역사가 될까.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응. 아닐 거다.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믿고 꿈을 믿고 노력한 나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