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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Nov 21. 2020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내게 몰린 날

엄마를 도와 김밤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 작은 식당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고 음식 서빙을 했다. 가끔 김밥도 말았다. 밥양 조절에 서툴렀던 나는, 종종 손님들에게 엉성하게 둘둘 말린 팔뚝만 한 김밥을 대령하곤 했다.


엄마의 김밥집에서 배우고 느낀 게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손님은 몰려다닌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점심시간, 저녁시간이 비슷하다지만 신기하리만큼 손님들은 몰려다녔다. 손님이 고르게 오길 바라는 내 바람과 달리 그들은 양떼처럼 몰려다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몰려다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무언가 내게 몰린 날이었다.


아침부터 마음 쓰이던 일은 퇴근 10분 전에 해결되었다. 할 일이 많아 머리가 복잡했다. 일의 우선순위를 잡기 어려웠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졌다.


금요일 이건만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업무 관련자는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손님까지 나를 찾았다. 나중에는 평소에 연락 없던 친구들까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손님이 고르게 오길 바라는 내 바람과 달리 그들은 양떼처럼 몰려다녔다.


나중엔 그냥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울리는 전화기를 가방 속에 던져 넣었다. 다음 주 업무에 대한 준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불금의 흥분에 젖어 언제 오냐는 아내의 연락에 나는 대꾸했다. 나 오늘은 너무 소진되어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쉬고 싶어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이 기분으로 그녀 앞에 웃으며 설 자신이 없었다.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빵을 잔뜩 샀다. 집에 도착해 그녀에게 인사 없이 내 방으로 직행했다. 음료 하나 없이 이불에서 빵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잠이 들었다. 머리맡에선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노홍철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계속 재생되던 무한도전 소리에 깨어보니 11시였다. 세상은 어두웠다. 아내는 무언가 기다리다 지쳐 안방에서 환하게 불을 켜고 잠이 들었다. 안방의 불을 끄고 따뜻한 차 한잔을 탔다. 세상은 변한 게 없었지만 내 기분은 나아져 있었다. 세상의 모진 바람을 잘 받아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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