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Dec 07. 2020

모든 것이 순조로운 날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날이었다. 출근길부터 그랬다.


신호등 빨간불은 내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덕분에 지각하지 않았고 하얗게 올라오는 모닝커피의 온기까지 즐길 수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K는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 점심 메뉴도 마음에 들었다. 업무 처리는 오늘따라 막힘이 없었다. 월요일 회의는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칼퇴근이었다. 퇴근길 역시 뻥뻥 뚫렸다. 내 낡은 자동차가 가까워지면 모든 신호등이 파란불을 밝혔다. 퇴근 후 달리기는 최고 기록을 찍었다. 순풍에 돛 단 듯, 손만 대면 터지는 날. 이 세상이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곧 불안감이 몰려왔다.


일희일비하는 게 삶이란 걸 알고 있었다. 오늘이 기쁘면 내일이 슬플 지도 모르 일이었다.


삶의 고통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날들을 지나, 삶의 고통까지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나였다. 그래서 난 종종, 너무 기뻐하지는 않는다. 기쁜 일 앞에서도 애써 침착하려 노력한다. 너무 기뻐하면 나중에 너무 슬퍼질 거 같아 조금 참는다. 속으로 조금 좋아하고 다시 중심을 잡으려 한다. 같은 이유로 너무 슬퍼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내게 수도승 같다 했다. 하지만 그 말조차, 내게 기쁨도 슬픔도 주지 못했다.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 복이 화가 되기도 화가 복이 되기도 하는 것. 물과 불이 사실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는 것. 심지어 삶과 죽음이 교차하기도 하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일이라고, 아까 내 옆을 지나가던 앰뷸런스의 소란스러움이 내게 일러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요일 새벽 두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