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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y 27. 2021

설거지하는 남자

산나물이며 버섯이며 이런 것들을 캐는 재미에 자주 산에 다니시던 장모님이었다. 태어나 노루궁둥이버섯을 처음 본, 고비와 고사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막냇사위는, 장모님께서 캐다주시는 그 귀한 것들을 그저 받아먹기에 바빴다.


그러다 장모님께서 산행 중 다리를 다치는 일이 있었다. 하산길에 나무뿌리에 걸린 한쪽 발의 발목뼈가 부러지는 사고였다. 절뚝이며 산을 내려와 병원에 가서야 뼈가 부러진 것을 알았다고 하시니, 그 정도였길 다행으로 여겼었다.


엄마를 업고 내려왔어야지 아빠는 뭐하는 거냐고, 큰소리치는 딸들에게 장인어른은 말씀을 아끼셨다.





바빠진 건 장인어른이었다. 수술 후 장모님이 병원에 머무시는 동안 밥 차리기, 설거지, 빨래를 홀로 하셔야 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병문안도 금지된 병원에 홀로 계신 장모님의 심부름도 도맡아 하셨다. 장인어른께서는 투덜투덜하시면서도 장모님의 손발이 되어주셨다.


얼마간의 입원이 끝나고 어머님은 퇴원하셨다. 초록 빛깔의 단단한 깁스 그리고 목발과 함께. 부러진 곳에 철심을 몇 개 박았다고 하셨다. 수술 부위가 아직 부어있었고, 한눈에 봐도 장모님은 추가적인 요양이 필요했다.


역시 분주한 건 장인어른이었다. 당분간 거동이 불편한 마누라를 위해 더 바삐 움직이셨다. 밥상을 준비하고 치우셨다. 벨소리가 울리는 휴대전화를 가져다주셨고 목발도 챙겨주셨다. 가끔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하셨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을 하실 것을.


덜거덕덜거덕. 설거지 내가 할게, 라며 나서는 막내딸을 제쳐두고 개수대 앞에 서 계신 장인어른의 뒷모습. 그 뒷모습에 불안해하는 티브이 앞 장모님과 그 뒷모습을 놀려먹는 딸. 그 뒷모습이 낯선 사위.


덜거덕거리는 그릇 소리는 그칠 줄 몰랐고

티브이에서 나오는 웃음소리 역시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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