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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pr 26. 2021

유모차와 어르신

언제부터인가 유모차는 동네 어르신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처음엔 그 모습이 낯설었다. 유모차는 당연히 젖먹이를 위한 이동수단이 아니던가. 아직 어리광을 피우는 다섯살배기가 유모차에 제 몸을 구겨 넣는 모습까지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유모차의 용도였다.


그렇게 내게 유모차는 그저 '육아용품'이었다.


유모차에 의지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은빛 청춘을, 운전자의 입장에서 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을 때, 그제야 나는 유모차의 용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유모차와 어르신은 천천히 도로를 횡단 중이었다. 4개의 바퀴와 손잡이는 어르신의 이동을 훌륭하게 보조하고 있었다. 유모차 앞쪽의 작은 바구니는 살짝 입을 벌려 대파를 보이고 있었다. 유모차가 훌륭한 지팡이인 동시에 장바구니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여행 중 마주친 어느 시골마을의 어르신도 유모차를 앞세워 걷고 계셨다. 달달거리는 바퀴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할머니는 작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그 모습에 아기의 걸음마를 떠올렸다.


이야기꾼인 한 선배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너 있잖아. 아이들이 왜 할머니 할아버지랑 친한지 알아?


머뭇거리는 내게 선배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란 말이지. 그런데 아이들은 이제 막 흙에서 나왔고, 노인들은 이제 곧 흙으로 돌아갈 거잖아. 모두 흙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끌리는 거지.


꽤 그럴듯한 얘기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감탄하는 나를 보고 뿌듯해하던 선배에 대한 기억도.






아직 내겐 유모차가 필요하지 않다. 아직 내 주변엔 유모차가 필요한 사람이 없다. 나와 내 주변엔 흙에서 멀어진 사람뿐이다.


내게도 아장아장 걷는 누군가에게 유모차를 선물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막 흙에서 나온 이를 위한 유모차도 좋고 곧 흙으로 돌아갈 이를 위한 유모차도 좋다. 그 걸음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내가 유모차를 사용하는 날, 내가 흙에 가까워지는 날 역시 올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날의 나는 의지할 바퀴가 있음에 얼마나 감사할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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