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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07. 2020

꼰대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진짜 꼰대는 자신이 꼰대란 걸 모른다

어김없이 바쁜 하루였다. 오전까지 분명 여유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일이 밀려들었다. 점심 이후, 아내와 통화하며 "오늘 이상하게 한가해"라고 말한 직후였다. 괜한 입방정을 떨었나 후회했다.


왜 일은 항상 몰려다니는 걸까, 직장은 왜 날 가만 두지 않는 걸까, 푸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부서 사무실 문이 열렸다. 드르륵. 고개를 든 순간, 눈이 마주친 이는 다른 부서 팀장이었다. 그가 우리 부서로 들어왔다.


잠깐 미소를 지었다. 눈이 마주쳐 어색하기도 했고 인사 대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당연히 우리 팀장을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그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잠깐 할 얘기 있는데, 밖에서 볼까?"


뜻밖에도 그가 찾아온 이는 나였다. 같은 부서의 팀장은 아니지만 안면이 꽤 있었다. 부서 간 업무 협조 기회가 있어 종종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었다. 사석에서는 형이라고도 부르는 팀장이었다. 팀장이 일개 팀원을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형,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사무실에서 야외 벤치로 무대가 바뀌었고, 공석과 사석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무엇보다 그가 '팀원'으로서 나를 찾았다기보다 '동생'으로 나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뭐… 그냥."


그냥 같이 않은 말투로 형은 그냥이라고 했다. 그냥 같지 않았지만 그냥 그의 말을 들었다. 지난 일 년 고생했단 격려를 내게 건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팀장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전부터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


팀원들과 세대차이, 소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던 형은 갑자기 '꼰대 커밍아웃'을 했다. 리더는 외롭다고 했던가. 리더는 리더이기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리더이기에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있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형의 고백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이야기에 형에게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못했다. 직장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사람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괜히 잘못 말했다가 버르장머리 없는 조언이 될까, 입을 닫았다. 입을 닫고 눈을 맞추어드렸다.


영국 BBC는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기도 했단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을 꼰대라 설명했다고 한다. 꼰대 팀장들의 총량이 정말 늘어난 걸까. 아니면 팀원들의 권익이 높아진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꼰대라는 말을 쉽게 듣는 요즘이다.


정말로. 꼰대는 어떤 사람일까?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사람, 권력으로 다른 의견을 짓누르는 사람도 꼰대의 부류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 꼰대는 자기가 꼰대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된 주장으로 스스로의 잘못된 생각을 강화한다. 잘못이 잘못을 재생산하고, 다시 타인의 의견을 짓누른다. 리더도 사람인지라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리더도 실수를 한다. 다만 훌륭한 리더는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줄 안다.


꼰대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 감정, 기분에만 충실하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오늘 미처 해주지 못한 말을 해주고 싶다. 일 년간 고생 많았다고. 형은 꼰대가 아니라고. 진짜 꼰대는 자신이 꼰대란 걸 모른다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짜 진심 형은 꼰대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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