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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05. 2020

어느 사내아이(2)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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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내는 대학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에 다진 성실과 배려는 사내를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잘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 했을 뿐인데, 대학에 갔다. 운이 좋았다. 적성과 재능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지만, 대학에 갔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더 거대했다. 그들은 사내보다 능력이 출중했다. 사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게 공부였는데, 이 마저도 쓸모없게 되었다. 사내는 대학 생활이 썩 즐겁지 않았다.


결국, 사내는, 거짓으로 자신을 부풀렸다. 술을 잘 마시는 사내인 척, 욕 잘하는 사내인 척을 했다. 그게 남자다운 모습이라는 믿음으로. 말 잘하는 척을 하다 말실수도 많이 했다.


성격은 고쳐지질 않았다. 어른이 되면 성격이 좋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아주 어려서는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고 했다는데. 커 갈수록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는 그들이 가진 것과 사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4.

군대에 다녀왔다.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기억을 안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쨌든 다녀왔다. 원하는 곳에 입사했다. 인생의 가장 큰 고비를 수능, 군대, 취업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고비를 넘었다고, 이제 행복할 일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욱 사내를 힘들게 했다. 남녀의 구분이 확실했고, 남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사내는 (언제나 그랬듯) 성실과 배려를 무기로 일했고 그 대가로 더 많은 일을 받았다.


거짓으로 자신을 부풀리는 작업도 계속했다. 열심히 술을 마셨고, 열심히 권력에 비볐다. 술 먹을 줄 아는 사내에게 더 많은 술과 더 많은 회식자리와 더 많은 시간낭비가 허락되었다. 힘들 때마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성실과 배려는 사내를 성장시키고 사회에 입문시켰다. 동시에 사내에게 인생의 괴로움을 던져주었다. 행복하고자 달려왔건만 괴로움이 더 컸다.



5.

괴로움 때문에 찾은 것은 책이었다. 언젠가부터 책 앞에 홀로 앉아있는 자신이 행복하단 걸 깨달았다. 다행히 책을 통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먼저, 모든 사내가 사내 다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내답게'보다 중요한 것은 '나 답게'이었다. 사내답지 못해 온갖 괴로움을 충분히 겪은 후였다.


또 다른 깨달음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신에 대한 배신이 될 수도 있단 거였다. 자신을 버려둔 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사내는 진짜 '나 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내는 태어난 본성대로 살기 위해 결심했다. 자신을 성장시킨 성실과 배려를 버리기로. 그러나 이미 성격이 되어버린 후였다. 고민 끝에, 성실과 배려의 대상을 바꾸었다. 직장이 아닌 사내가 좋아하는 것에 성실하고, 타인이 아닌 자신을 배려하기로 결심했다.



6.

사내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남에게 잘 보이지 않기로,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려두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배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술 마시는 모습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내는 이제 글을 쓴다. 책을 읽을 때의 자신이 좋은 것처럼, 글을 쓸 때의 자신이 좋았다. 행복했다. 글쓰기가 미처 몰랐던 자신의 재능이라 믿게 되었다.


사내가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성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간 서민재> 연재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매일 또는 격일 간격으로 글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글 쓰는 모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내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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