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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04. 2020

어느 사내아이(1)

첫 번째 이야기

1.

사내는 사내답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고 힘도 약했다. 그렇다고 또래를 이끄는 것도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운동이라곤, 엄마가 보내준 태권도 학원에서 하는 게 전부였다.


태생부터 그랬는지, 사내답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럼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사내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사춘기를 거치며 자존감도 함께 떨어졌다.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행의 시작이었고,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었다. 사내는 남자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더 크고, 더 힘세고, 더 사내다운 친구들 사이에서 더욱더 작아졌다. 소극적이었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친구들과 멀어졌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데 서툴렀다.


가정의 관심이 부족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부모는 사내를 아꼈다. 부모 모두 밤늦게까지 일 하며 건실하게 가정을 가꾸었다. 부모는 좋은 부모였고, 사내는 누구보다 착한 아들이었다. 착하기만 한 게 문제였다.



2.

사내는 공부에 몰두했다. 머리가 비상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잘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 사내에게 공부는 자신과 타인을 잇는 끈이었다.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방법이자, 친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이며, 부모에게 착한 아들이 되는 방법이었다.


사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또 다른 방법은 '싸우지 않기'였다. 싸우지 않기 위한 전략은 '그들의 바람대로 하기'였다. 누군가 시킨 일은 정말 잘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친구들의 부탁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누구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였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배려는 자신에 대한 배신이란 걸 알지 못했다.


이렇게, (공부로 다진) 성실과 (넘치는) 배려는 사내의 학창 시절을 압축하는 두 단어였다. 사내는 이 두 가지로 또래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학업을 이어나갔다. 학교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또래가 조금은 있었고 존재감도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사내는 대학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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