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투지가 느껴지는 무대에서
지난 주말, 조카의 댄스 발표회에 다녀왔다. 그 이름하여 '아라 댄스 페스티벌'. 댄스 학원 다닌 지 두 달 된 조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진작부터 주말 스케줄을 비워두었다. 조카의 재롱잔치 정도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 장소로 향했다.
실수마저도 귀여운 어린이들의 학예회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곧 내 무지를 깨달았다. 그들이 준비한 것은 '재롱잔치'가 아니라 '진짜 공연'이었다. 화려한 무대와 조명, 의상과 메이크업은 기본이었다. 엄청난 실력의 공연들이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공연팀(그러니까 댄스 학원 수강생들)이 나왔다. 그들의 무대는 하나같이 대단했다. 나는 진심이 우러난 "우와아!"를 연발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무대였다. 그 정도로 완벽했다. (댄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그랬다.) 웬만한 콘서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 연예 기획사에서 이들의 공연을 보고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한단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무대에 서는 수강생들이 더 성숙할수록 그 공연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취미가 아니라 죽기 살기로 하는 느낌이었다. 날 봐! 날 좀 보라고! 진짜 삶의 투지가 느껴지는 무대들이었다.
그들의 투지와 열정을 보며 다짐했다. 아. 나도 내 분야에서 저런 에너지를 내뿜어야지. 내 투지와 열정을 글로써 보여줘야지. 저 무대에 서 있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야지.
아쉽게도 사랑하는 조카의 공연은 2분 만에 끝이 났다. 격렬하게, 아니 소심하게 조카의 공연을 응원했다.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보여준 조카가 자랑스러웠다. 공연의 끝자락에서 댄스 학원 조아라 원장은 다음 문장으로 폐회사를 열었다.
(이번 공연을) 즐기는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요.
즐기는 마음, 설레는 마음이라. 두근거리며 이 대단한 무대를 준비했다는 거다. 나 같으면 조금은 괴롭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두근거렸을 텐데. 그녀는 즐기고 설레는 마음 때문에 두근거렸단다. 그렇다면 그녀는 진짜 프로다.
좋아서 하는 일도, 벌어먹고 살기 위해 하다보면 싫증 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던 일도 설레는 마음이 어느 순간 식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활동했을 그녀는, 아직도 즐기며 춤을 추고 또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에게 어떤 묘책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나에게 이런 프로의식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나는 즐기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나. 설레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나. 다시 한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