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은 꼭 있다.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타인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도 문제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거의 항상 주변에 있다는 것이다. 부서 이동으로 헤어졌다 싶으면 또 나타난다. 하나둘은 꼭 나타난다. 피할 순 있지만, 안 볼 순 없다. 보기 싫은 이들도 봐야만 하는 것, 이게 직장 생활 인지도 모르겠다. 월급의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도 그런 동료가 있었다. 같은 직급에 나보다 나이는 많은 분이었다. 부서가 달라 종종 업무 협조를 요청을 했는데… 매번 나를 힘들게 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을 힘들게 했다.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대답도 건성. 표정은 똥씹.
그가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 협조를 해주긴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요청자의 기분도 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업무 협조를 피했다. 웬만하면 내가 했다. (아! 이걸 의도한 건가?)
아무튼 그렇게 겨우 인사만 하고 지냈다. 그러다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앞둔 흡연실 앞에서 그와 마주쳤다. 비흡연자인 나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에구. 고생이 많으시죠?"
엄청난 의도를 갖고 한 말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표정이 워낙 안 좋았기에, 인사치레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가까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나를 잡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세상 고생은 혼자 다 한다는 표정으로.
신입사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거침 없었다. 그는 언제부터 얼마나 자신이 고집스러웠는지, 스스럼없이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역시 그는 남달랐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신입 때도 지금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한결같았다. 흡연실에서 가지고 나온 담배 냄새가 다 사라지도록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슬쩍 보니 퇴근 시간이 지나있었다. 칼퇴는 내게 정말 소중한 가치지만, 그를 끊을 수 없었다. 퇴근이라는 것을 잠시 내려두고 그에게 집중했다.
외로웠을까?
사실 그도 외로웠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도 힘들었는지 모른다. 내가 그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길 바란다.
무용담을 들으며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의도된 불친절'이라 생각했던 그의 표정과 태도가 '타고난 성품'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원래 툴툴대고 까칠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지만, 타인에게 의도적인 불편을 주는 게 아니라면 그가 '조금 덜 나쁜 사람'이라고 변호해주고 싶다.
그날 이후 그와 좋은 사이가 된 건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 워낙 달라 그건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업무 협조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다만 그가 내 인사에 조금 더 큰 소리를 응답해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사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