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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18. 2020

용산역에서 꿈을 찾는 사람들

이 꿈과 저 꿈 사이에서

"안녕하세요. 이거 잠깐 보고 가세요."


어느 월요일 저녁. 용산역 개찰구를 나오는데 누가 나를 불렀다. 여학생이었다.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는 앳된 외모였다. 무슨 일이지, 하고 잠깐 멈춰 섰다.


"제가 이번에 공모전을 준비하는데…
재료비가 모자라서요…."


그러면서 은목걸이를 내밀었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내게 내밀었다. 보통은 이런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던 나였다. 지하철의 불법 상행위는 물론이고, 여행지의 호객 행위는 더더욱 싫다. (그들의 능수능란함에 많이 휘둘려봐서 그런 거 같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여학생의 서툰 표정과 말투에 이끌렸다. 그녀의 어색함에서 순수와 진정성을 보았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열정이 느껴졌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알고 보니 대학에서 금속 공예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몇 달 뒤에 있을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재료값이 모자란단다. 나는 이 쪽에 문외한이지만, 잠깐 생각해도 금속 재료를 사는데 돈이 꽤 필요할 것 같았다.


아주 잠깐, 의심했다. 학생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금속을 디자인하고 조각하는 사람인지, 거짓을 디자인하는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꿈을 위해 애쓰는 사람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 없었다. 내게는 아직 그런 혜안이 없었다.


"얼마예요?"


점점 안 사기 힘들어졌다. 여학생은 가판대도 없이,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은제품의 모양과 가격을 불러주었다. 생각보단 가격이 있었다. 잠깐, 생각했다.


내가 하기엔 너무 앙증맞고 작은 목걸이였다. 아내는 원래 액세서리를 하지 않고, 엄마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다. 그렇다고 주변에 선물하기도 애매했다. 필요치 않은 물건은 사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지만 지갑을 열었다.


"그걸 왜 샀어?"


…라고 묻는다면 '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용산역에 있었던 이유는 나의 꿈 때문이었다. 요즘 월요일마다 서울에 간다. 내 꿈을 위해 퇴근 후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 꿈을 가진 내게, 그녀 역시 꿈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한 사람의 꿈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마음에 뿌듯했다. 동질감도 들었다. 꿈의 모습은 다르지만, 꿈을 좇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은 나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저도 작가 되려고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속으로 말했다. 좀 주책일까 싶어 그만두었다. 그리고 역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하면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용산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꿈'으로 보였다. 그들은 무슨 꿈을 꾸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각자가 간직한 꿈의 형태와 크기는 어떠할까? 각자가 간직한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다시 개찰구로 향했다. 늦은 저녁도 해결했으니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여학생이 비슷한 작품을 팔았다. (아마 같은 대학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나는 또 다른 여학생 앞에 섰다. 미안하지만 그것까지 살 순 업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두 번째 만난 학생을 뒤로하고 기차로 향했다. 두 사람의 것을 모두 사주진 못하지만, 두 사람을 꿈은 모두 응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목걸이를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사진=서민재




|커버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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