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색은 무엇일까?
삶의 모습에 정답이 있을까. 만약 누군가 한 가지 정답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꼰대일 확률이 높다. 독단적이고 강압적이며 융통성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아니면 시야가 매우 좁거나.
내가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잘 살고 있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주관적일 수 있다. 나만의 기준, 나만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개 위험하다. 그리고 되게 위험하다.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이 아니듯, 우리 삶의 다양성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손에 꼽을 수 있지 않다. 빨강과 보라 사이에 무수한 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나는 이것을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지개는 7가지 색이 아니다.
우리 삶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사실 머리로는 알지, 아직도 체득하는 중이다. 나와 다른 의견, 나와 다른 삶, 나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어렵다. 나도 모르게, '내가 정답이다'는 생각이 자꾸 자라난다. 신경 안 쓰면 어느새 자라있는 손톱처럼.
너무 부끄럽다. 너무 고치고 싶다. 나의 건방짐과 오만함이 내 삶을 옥죌 것을 안다. 몰래 자란 손톱은 반드시 주인 몸에 생채기를 낼 것이다. 주기적으로 손톱을 깍듯 나의 편협한 생각을 쳐낼 것이다. 나는 그래야 하는 인간이다.
삶의 모습은 오만가지 색깔이다.
다행이다. 삶의 색이 이렇게 다양해서. 우리는 색도 질감도 다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삶은 재미있고, 의미있고, 가치있다.
누군가의 삶이 부러울 순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정답이 아니다. 정답처럼 느껴지는 건 느낌 탓이다. 목이 길면 아름답다 느끼는 아프리카 부족이나, 여자의 발이 작을수록 예쁘댔던 전족. 그들은 아름답다지만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허상이다. 미의 기준은 변한다. 가치는 시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전족 여성이 신발을 벗어던지듯, 그렇게 이 시대의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고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 애써 그 의미를 찾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자신만의 색'을 찾아보자. 내가 지닌 보물을 나도 모르고 죽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학습된 버릇을 버리자. 하나의 정답을 찾는 버릇,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버릇을 버리자.
*무수히 많은 삶의 색을 존중하며 내 삶의 진정한 색을 찾아보자. 진짜 내가 지닌 색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