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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20. 2020

삶의 모습은 오만가지 빛깔

내 삶의 색은 무엇일까?

삶의 모습에 정답이 있을까. 만약 누군가 한 가지 정답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꼰대일 확률이 높다. 독단적이고 강압적이며 융통성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아니면 시야가 매우 좁거나.


내가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잘 살고 있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주관적일 수 있다. 나만의 기준, 나만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개 위험하다. 그리고 되게 위험하다.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이 아니듯, 우리 삶의 다양성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손에 꼽을 수 있지 않다. 빨강과 보라 사이에 무수한 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나는 이것을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지개는 7가지 색이 아니다.
우리 삶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 나란 인간

사실 머리로는 알지, 아직도 체득하는 중이다. 나와 다른 의견, 나와 다른 삶, 나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어렵다. 나도 모르게, '내가 정답이다'는 생각이 자꾸 자라난다. 신경 안 쓰면 어느새 자라있는 손톱처럼.


너무 부끄럽다. 너무 고치고 싶다. 나의 건방짐과 오만함이 내 삶을 옥죌 것을 안다. 몰래 자란 손톱은 반드시 주인 몸에 생채기를 낼 것이다. 주기적으로 손톱을 깍듯 나의 편협한 생각을 쳐낼 것이다. 나는 그래야 하는 인간이다.


삶의 모습은 오만가지 색깔이다.


당신에게 - 당신이란 존재

다행이다. 삶의 색이 이렇게 다양해서. 우리는 색도 질감도 다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삶은 재미있고, 의미있고, 가치있다.


누군가의 삶이 부러울 순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정답이 아니다. 정답처럼 느껴지는 건 느낌 탓이다. 목이 길면 아름답다 느끼는 아프리카 부족이나, 여자의 발이 작을수록 예쁘댔던 전족. 그들은 아름답다지만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허상이다. 미의 기준은 변한다. 가치는 시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전족 여성이 신발을 벗어던지듯, 그렇게 이 시대의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고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 애써 그 의미를 찾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자신만의 색'을 찾아보자. 내가 지닌 보물을 나도 모르고 죽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학습된 버릇을 버리자. 하나의 정답을 찾는 버릇,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버릇을 버리자.

*무수히 많은 삶의 색을 존중하며 내 삶의 진정한 색을 찾아보자. 진짜 내가 지닌 색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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