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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r 03. 2020

출근길에 본 걸 퇴근길에 보니

길 위에서의 마음

한산한 외곽도로를 운전해 출퇴근한다. 익숙한 것이 좋아 항상 같은 길로 다니는데, 그래서 출근길과 퇴근길은 동일하다. 방향만 다를 뿐, 마주하는 풍경도 동일하다.


극명하게 다른 게 있다면 길 위에서의 내 기분이다. 출근하는데 날이 쨍하면 하늘이 나를 놀리는 것 같다. 반면, 퇴근하는데 구름 한 점 없다면 나를 축복해주는 느낌이다. 출근할 때의 단풍에서 은행 똥냄새가 난다면, 퇴근할 때의 단풍에선 가을 갬성이 묻어난다.


출근길에 보이는 모습과 퇴근할 때 마주하는 풍경.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아니 풍경은 어찌 보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퇴근 시간에 얼마나 가까우냐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외곽도로를 출근 시간에 맞추어 달려보았다. 그날은 연가를 쓴 날이었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길에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바깥 모습도 교통혼잡도 아니었다. 내가 출근길 위에 있다는 것, 이 길을 지나면 예기치 못한 두려움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 이것들이었다.


직장 그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직장에 가까워올수록 가슴이 빨리 뛰기 때문이다. 생계유지와 커리어에 도움을 주어 고마운, 그러나 월급날 외엔 그 고마움을 체감하기 힘든 그런 곳. 다만 출근하기 싫은 뿐. 그래도 출근하고 있을 뿐.


매일 출근길에 마음을 다잡는다.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려 애쓰고, 오늘의 직무를 떠올린다. 룸미러를 향해 억지웃음도 지어본다. 출근 십 분 만에 웃음이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이 애증의 관계를 끊을 수 없기에.


그나저나 오늘의 퇴근이 기다려진다.




|커버 사진|

Pixabay

zheng2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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