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내어준 사람들
'무릅쓰다'를 '무릎쓰다'로 잘못 쓴 적이 있다. 힘든 일을 감수한다는 의미의 '무릅쓰다'와 누군가 '무릎'까지 꿇어가며 고생하는 모습이 절묘하게 겹쳤다. 나 혼자서, 두 단어가 어원적 연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썼던 것 같다. (실제로는 두 단어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닌 걸 알았지만 자꾸 '무릎쓰다'로 쓰고 싶어 진다. 쭈그려 걸레질하다 무릎이 아파올 때면 그렇다. 운동 후 무릎 관절이 아파올 때면 그렇다. 가끔 무릎을 식탁에 부딪힐 때도, 괜한 억지를 부리고 싶다.
나의 이런 억지가 최고조에 이를 때는, 내 무릎이 아닌 타인의 무릎을 마주할 때다. 자신의 무릎을 내어줄 정도로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을 볼 때다. 세상이 팍팍하다지만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많은 잠수사들이 그랬고, 숱한 화재 현장의 소방관들이 그랬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신의 무릎 그 이상을 내주었다. 그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겨우 몇 글자로 담아낸다는 게 죄송할 따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시끄럽다. 전 국민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시국에도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이 있다. 방역 및 의료 현장에서 애쓰는 분들이다. 공무원들도 사태 수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격무에 시달려 건강과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사람들. 분명 우리는 이들에게 빚을 졌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대구로 달려갈 상황이 안되기에, 나 스스로를 내어 줄 용기가 없기에, 나는 더욱 이들을 기억하고 힘을 실어드릴 것이다. 안간힘을 다해 잊지 않을 것이다.
|커버 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