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결혼 6년 차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아내를 바꿔보자고.
아내의 좋지 않은 습관이 자꾸 눈에 밟혔다. 예전엔 보이지 않았다. 같이 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감히, 아내의 습관을 내가 직접 바꾸어보기로 했다. 그녀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솔선수범이 중요한 법. 내가 생각하는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몸소 실천했다. 완벽하진 않아도 노력하는 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여러 시도를 했다. 칭찬도 해봤다. 회유도 해봤다. 고백하자면 때론 윽박이었다. (나는 나쁜 남편이었다.)
물론 아내도 노력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다. 나는 좌절했다. 내 근처에 있는 사람 하나 변화시키지 못하다니. 나의 무능과 아내의 고집을 탓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이었단 생각이 든다. 아내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건 '내 기준에서' 마음에 안 드는 무엇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나의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는가? 나와 같이 살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옳은 일인가? 나의 잣대는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인가?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기, 천천히 살아가기, 여유를 만끽하기. 내가 바꾸고자 했던 그녀의 모습들이다. 나의 개미 콤플렉스는 그녀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았다. (나는 정말 나쁜 남편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내의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았다. 근면성실을 중시하는 건 '나의' 가치관이지 '그녀의' 가치관이 아니다. 지금은 쌍팔년도가 아니다.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아내에게 강요할 시기도 아니다. 상대의 의사를 묻고 마주 앉아 '근면성실 프로젝트 발대식'이라도 했어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건 나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내를 바꾸기에 앞서, 그녀의 타고남을 인정했어야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이 인정에 이유는 없다. 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인정하기’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건 분명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결혼 7년 차. 올해엔 조금이라도 덜 나쁜 남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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