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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Feb 01. 2020

말은 죽지 않는다

말이 살아남아 만드는 것들

말에 대해 생각한다. 말하면 없어지는 말. 인간의 입에서 나와 공중으로 흩어지는 소리. 탄생과 함께 증발되는 언어.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말은 더 멀리 퍼진다.


말은 생명력이 강하다. 말의 소리는 소멸되지만, 결국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아주 좋은 말이나 아주 좋지 않은 말은 기억에 남고 심지어 역사에 남는다.


말은 이야기를 만든다. 누구나 아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과는 빨갛다. 나도 안다. 사과는 둥글다. 너도 안다. 누군가 독이 묻은 사과를 공주에게 주었다. 정말? 벌써 뒷내용이 궁금하다.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다.


이처럼 이야기에는 서사와 플롯이 있다. 나름의 몰입 구조를 지닌다. 여기에 적당한 조미료를 치면 더욱 맛이 산다. (거짓인걸 알면서도 보게 되는 MSG 토크쇼처럼!)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이면 더 군침이 돈다. 인간은 여기에 끌린다.


이야기 중에서도 '남 이야기'는 특히 더 재밌다. 그래서 말은 소문을 만들어 낸다. 가상의 인물이 아닌 현실 속 인물. 그것도 내가 잘 아는 인물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더 흥미가 가는 것처럼!)


소문은 선입견이 되고, 선입견은 다시 소문이 되어 더 많은 '남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정작 소문의 주인공은 알지 못하는 얘기들이 이 세상을 떠 다닌다. 그런데 생각해보았는가? 소문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다니던,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을.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 홀로 느끼느 상실감을.




중학생 때 일이다. 점심시간에 친구 A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친구 A는 평소처럼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고, 나는 평소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날따라 친구 A의 말속에 친구 B의 험담이 섞여 있었다. 원래 남의 험담을 좋아하는 친구 A가 아니었고, 친구 B가 유별난 것도 아니었다. 정말 그날따라 그런 거였다.


"걔 좀 이상하지 않냐?"


그런데 교실 앞 대형 텔레비전 뒤에서 친구 B가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체육복을 입으려 잠시 몸을 숨겼던 친구 B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남 이야기' 현장에 그 '남'이 나타나다니. 아연실색하며 다가가 사과하는 친구 A와 이를 거칠게 뿌리치는 친구 B의 뒷모습을 보며,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려서부터 내 앞에 없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게 싫었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할 바엔, 말을 하지 않는 게 속 편했다. 남 얘기를 하는 것도 싫었고 듣는 것도 싫었다.


남들이 내 얘기를 하는 것조차 싫었다. 심지어 그게 좋은 이야기라 해도 싫었다. 좋은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며 변질될 수 있단 것 알았다. 이상하게도 남 이야기의 대부분은 나쁜 소문에 대한 거였다.


그래서 말은 싸움을 만들기도 한다. 멀리 퍼져나간 소문이 주인공을 괴롭힌다. 억울한 소문의 주인공은 그 소문의 근원을 파고 들어간다. 최초의 유포자를 찾아도 소용없다. 말과 소문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정작 최초 소문 유포자에게 나쁜 의도가 없는 경우도 있다. 무심코, 생각 없이 한 말이 소문으로 번지는 경우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말에 맞아 죽는 이들도 있음을.


가장 중요한 건 말이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무리 짓고 관계를 맺으며 인간은 더 큰 무리를 형성해왔다. 인간과 언어는 함께 발전해왔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뒷담화'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 얘기다. -유발 하라리 저, <사피엔스> 중에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싫다. 타인과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인간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능력을 통해 무리를 구성한 인간이지만, 그 말이 관계를 깨뜨린다는 걸 알고 더 말하는 게 싫어졌다.


말이 금방 죽었으면 좋겠다. 오래 살지 못했으면 한다. 인간들의 협동과 친교와 신뢰를 구축해주는 건 고맙지만 자기 할 일을 다한 말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돌고 돌아 말이 우리 사이에 싸움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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