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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Feb 29. 2020

퇴임식에서 들은 뜻밖의 이야기

아직도 '나'를 찾고 있었다

서른 다섯 직장인이 뭘 알겠냐마는, 세월과 연륜에는 확실히 힘이 있다. 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을 일한 사람들을 보면 뭔가 다르다. 여유라고 해야 할까. 시간의 힘이 주는 어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이런 아우라를 가진 이들도 물러날 때가 있다. 사뿐히 물러나는 그들을 위한 퇴임식. 그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축하하는 자리지만, 이별은 슬프다. 다행히 요즘은 '끝' 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더 의미를 둔다.




오랜만에 퇴임식에 참석했다. 퇴임식장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곧이어 오늘의 주인공이 도착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주인공과 마주 앉게 되었다. 퇴임하는 선배님의 얼굴은 밝았다.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다,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이전부터 궁금했지만 선뜻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실례가 될까 싶어 단어 선택에 주의를 기울였다.


 "선배님 혹시, 퇴임 후에 계획이 있으세요?"


선배님의 대답이 돌아왔다.


 "응, 일단은 좀 쉬어보려고요."


끄덕끄덕. 수십 년간 달려오셨으니 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나는 저런 시절이 언제 오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쉬면서 내가 좋아하는 거 찾아보려고요. 아직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어떠한 대답도 못 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는 최근 나의 관심사다. 몇 년 안에 찾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데 까마득한 어른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30년 넘게 일하고 아이들을 키웠다고 하셨다. 직장과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하셨다. 나는 참담함과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어설픈 위로가 건방짐이 될까 싶어 그만두었다.


참, 쉽지 않다 생각했다. 나를 찾는 일이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나'를 찾는 작업을 멈추지 말자고 다짐했다. 퇴임, 아니 퇴사 전에 찾아내자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선배님을 떠올렸다. 선배님 세대의 역할을 떠올렸다.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요즘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부모이자 스승이자 선배였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우리 사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선배 세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퇴임을 앞둔 당신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세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당신이 꽃길만 걷길. 직장을 떠나 가정을 떠나,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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