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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r 03. 2020

계절의 흐름을 아는 사람

목이 아파도 좋고 눈이 시려도 좋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고3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밤낮으로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이동하면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영어 공부를 했다. 이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도 없던 것 같다.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었는지, 내 안의 열등감 극복을 위함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딱 일 년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다.


치열한 만큼 힘들었다. 여유도 여행도 없었다. 공부 외의 것은 철저하게 차단했다. 오죽했으면 맑은 날이 싫었다. 화창한 날은 왠지 마음이 동해서 그랬다. 어느 주말, 학원 가는 길에 마주친 맑은 하늘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 이후 하늘을 보지 않았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미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나는 서서히 하늘 보는 법을 잊었다. 아주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하늘 보는 일이 익숙지 않다.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하늘 한 번 보지 않는 나다. 하늘을 보지 않으니 계절의 흐름도 알기 어렵다. 이제야 하늘을 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다 지난가을, 산책길에 바라본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단번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의 깊이와 색깔을 보니 그건 영락없는 가을이었다. 걸으면서 목이 아프게 눈이 시리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억울했다. 그동안 하늘을 못 보고 살았다는 게 억울했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이렇게 사소한 행복을 놓쳤다니! 내가 왜 일을 하고 내가 왜 사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기 위한 게 아닌가?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일을 하는 건데, 일 하느라 하늘도 못 본다는 건 주객전도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이 바라던 삶도 아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수렵채집인들이 정착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노동 시간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 했다. 이 사기극의 연장선에 내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계절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싶다. 그런 여유와 정취를 아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자연스럽고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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