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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Mar 09. 2021

네덜란드, 일하기 좋은이유 3가지

- 디자인을 하며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 -

네덜란드에서 생활하고 디자인이라는 일을 하며 느낀 이 곳에서 일하기 좋은 이유 세 가지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에 불과하고,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곳의 사회, 조직 문화, 사람들 성향 등이 어우러져 더 두드러진다고 생각해왔다.


1. 수평하고 편평한 조직 분위기 

겪어보지 전에는 몰랐다. '수평적', 'Flat'하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내 경험이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속했던 곳에서는 그랬다. 누구나 무엇에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내가 눈치를 줄 일도 없다.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의식도 없고, 직급이 더 높다고 해서 갑질을 하거나 특별 대우를 받는 일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어떤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는 일도 거의 없다. 이 곳 나름의 규칙들도 물론 있지만,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인격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경력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또, 그렇게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내 의무기도 하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아직도 이게 불편할 때가 있다. 본능적으로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는데도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나 혼자 족쇄를 만들 때도 있다. 더 편해져야 한다.


2. 자유로움과 효율적인 의사소통

비슷한 맥락이다. 자유를 얻기 전에는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몰랐다.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거리낄 것이 없다. 손해를 봐도 내 손해고, 이득을 봐도 내 이득이다. 그리고 나도 남들이 뭘 하든, 어떻게 하든 법을 어기는 게 아닌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의 의미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내가 누구인지,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같은 전공을 한 친구들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물론, 많은 사람들이 UX/ UI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 다른 형태로 일하기를 선택한 사람들도 많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스타트업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 대다수지만 프리랜서, 개인 스튜디오, 파트타임 등등 형태도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물론 이렇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보다 낮다고 느껴졌다. 특히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OOO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없이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분위기다.


또 한 가지, 의사소통이 효율적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가끔은 예의 없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이 나라 사람들은 직설적이다. 그래도 말 뜻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 사람이 A라고 하면 A, B라고 하면 B인 것이지, 숨은 뜻도 없고 더 신경 쓸 거리가 없다. 그러면 남들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해주는 것은 사회성에 속하는 영역이고, 직설적인 말하기는 소통 방식의 영역이다. 그리고 숨은 뜻이 없으니 누가 내게 돌직구를 던진다고 해도 그 일 또는 그 상황에 대해서만 고려하면 된다. (처음엔 마음의 상처를 조금, 아니 많이...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은 서로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준다. (내가 너무 세게 말할까 봐 걱정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가 세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3. 기업, 사회에서 높게 평가되는 디자인/ 디자인 적 사고의 가치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매주 한번 코로나 관련 브리핑을 한다. 락다운 수칙도 몇 주마다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요즘 세태에 혼란스럽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런데 서비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얼마 전 정부 의뢰로 코로나 정책 관련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정부에서 공공 서비스에 대해 디자인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투자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디자인에 예산을 투입할 만큼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에 놀랐다.


네덜란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디자이너들의 포지션이 다양하다. 디자인적 사고를 적용해 고객들의 니즈를 깊게 파악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는 등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적 사고의 가치를 진작에 파악하고, 디자이너들이 신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느낌이다.




여기가 너무너무 좋고,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어 안달 난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내가 느꼈던 장점들이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깨우쳐가길 바라고 있다. 이런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발판 삼아 나는 많이 성장해왔다. 그것만으로도 이 곳이 일하기 좋다는 이유가 되기엔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변화를 겪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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