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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Jul 24. 2021

근면 성실만이 미덕은아니더라고요

네덜란드에서 통하는 나의 미덕을 찾아서...

어릴 때 영어학원에서 처음 배운 어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Dilligent, 부지런하다, 근면하다, 성실하다. 책임감 있고 꾸준한 노력과 정성을 쏟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좋아하는 말이다. 학년말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이 써주시는 문구 중에도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건 최고의 칭찬이었다. 회사에서는 충성심, 애사심과 함께 당연히 깔고 가야 하는 덕목이자 자기소개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그런데 사실 소위 능력자라 불리는 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근면성실은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성실하지 않아도 능력자가 될 수 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능력자이지 성실하고 착한 친구가 아닌데... 내 무의식 속에 이 단어가 콕 박혀 있었는지 커버레터에도 내 장점이라 강조해두었었다 -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데드라인을 잘 맞춘다는 말과 함께. 첨삭을 해주던 친구가 물었다. '이게 너의 장점이라고?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냐? 장점이라고 하기엔 너의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맞는 말이다. 내 짧은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여기서 근면성실은 미덕이 아니다. 물론 그런 면이 있으면 좋다. 하지만 굳이 강조하진 않는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미덕들이 많아서 '근면성실'의 설 자리가 작다. 그중 세 가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주어진 일을 끝마치는 것(getting things done)이 중요하다. 내가 아주 성실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일단 내 일을 마치기만 하면 된다. 출근을 9시에 하건 12시에 하건, 내 맡은 일을 다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성과가 없으면 일을 못하는 사람이고, 겉으로 보기엔 여유가 넘쳐 보여도 성취도가 높다면 능력자로 누구나 인정해준다. 


두 번째, 액션을 취하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태도(take initiatives and action)다. 한국에서는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면, '그 친구,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열심히 하고 아주 진국이야. 성실한 친구지' 하고 알아주는 훈훈한 풍습이 있다 (요즘 분위기는 또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뒤에서 묵묵히 하는 친구들을 굳이 찾아내 알아주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앞에 나서서 아이디어도 내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때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당히 티도 내야 한다. 과대 포장하거나 잘난 척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자랑할 일은 자랑해줘야 한다. 무언가를 잘 해내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왜 잘한 건지, 본인이 아니고서야 알려고 노력하고 칭찬까지 해주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좋은 팀원이 될 수 있는지(team player)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학교든 회사든 어느 단체에서든 협업이 강조되기에 그 협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가 되겠다. 특히 그룹 내의 조화로움에 기여할 수 있는지, 다양한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는지 등등이 중요한 미덕이다. 열린 마음으로 내가 하는 일, 진행 경과, 목표, 다음 스텝, 필요한 인풋 등을 공유하는 데에 주저하면 안 된다. 또 피드백을 주고받고, 전체 그림에 도움이 될만한 방향으로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건설적인 태도도 중요하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유독 투명성(transparency)에 가치를 둔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있는 업계(IT, 디자인) 특성상 그럴 수도 있다. 의사 결정을 할 때,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예외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언제 공개가 되는지 등도 미리 공유한다. 


가끔은 학창 시절처럼 그저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쉬웠던 것 같다는 자조 섞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게 또 나의 미덕(이자 단점)이다. 자꾸 새로운 걸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근면성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미덕과 가치들도 많고 한 가지를 못해도 다른 몇 가지를 잘하는 뛰어난 사람도 많다. 근면 성실하지 않아도 한국에서도 인정받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에 무작정 열심히 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날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의 가치를 잘 알아주는 곳을 찾아가면 금상첨화라는 게 오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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