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딧 Oct 24. 2021

아프리카에서 디자인한다고 뭐, 특별한 건 없어요

사용자 대상이 다를 뿐, 추구하는 목적도 접근 방식도 똑같다

아프리카로 간 디자이너라고 제목을 거창하게 붙였다. 그러나 아프리카라는 지역을 살린 이 제목이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그럼 이 분야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해보았는데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한동안 적정기술, 제3세계를 위한 기술,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나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을 위한 기술,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인다. 여기서도 마음이 좀 불편하다.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라는 말도 이미 개발'된' 나라, 잘 사는 나라의 입장에서 그들만의 기준으로 전 세계 곳곳을 나눠버리는 조금은 오만함이 섞여 있는 말이다. 자신의 환경이 외부 누군가에 의해 제1 세계, 2 세계, 3세계로 나뉘고 그중 3세계에 속해 개선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구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1 세계에 속해 그 차별을 받지 않는 사람이기에 더욱 다른 구성원들의 입장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세계은행에서는 국가 소득 수준에 따라 저소득-중간 소득-고소득 국가로 분류하는데 통계로 근거를 댈 수 있는 이 표현이 더욱 객관적이다. 또 누군가"를 위한"이라는 표현도 좀 거슬린다. 요즘에는 잠재적 사용자와 함께 디자인을 하는 코-디자인, 코-크리에이션이라는 개념이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한 다기보다는 함께 디자인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적정 기술은 사실 아프리카나 다른 저소득국가만을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다. 적정 기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 한 공동체의 문화, 정치, 환경 적인 면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기술. 특정 지역이나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이나 공동체의 다양한 요소에 맞추어 개발하고 적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을 결부시키는 오해가 생긴 것은 왜일까.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제품, 서비스가 기술 집약적인 곳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 국가의 사용자들은 같은 조건에서 그 제품이나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고, 같은 값을 지불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개발했을 때 그 결과물이 기존과는 매우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사용자에게 더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인프라의 차이가 있어 첨단 기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고자원 국가에서 마켓 세그먼테이션을 하듯이 그저 사용자 층에 따라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일 뿐이다. 추구하는 목적도 접근 방식도 모두 같다고 본다.

적정기술, 디자인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오해받는 사항 세 가지를 더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나라 역시 개발도상국, 저 소득국가에 속했던 나라다. 그리고 고소득 국가로 발전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나라 내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로써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저소득국가의 발전은 우리에게도 좋다. 우리나라가 타깃 할 수 있는 시장 규모도 더 커지고, 지속 가능한 가치를 함께 실천할 수 있다.


둘째, 그렇지만 단순히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 기회가 제한된 사람들이다.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면 더 많은 꿈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노력의 부족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야 바깥까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구를 쥐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물론 많은 국제 개발, 지원 프로젝트들이 막대한 예산으로 고소득 국가나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디자인으로 이 사람들이 잠재적 소비자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국적 대기업 유니레버의 제품은 아프리카 시골 마을 곳곳의 슈퍼에서도 판매한다. 소량으로 포장해 1, 2회 용으로 판매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용자들을 노리는 것이다. (물론 샴푸 한통을 사는 게 샘플 사이즈로 포장된 샴푸를 100개 사는 것보다 경제적일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이 지속 가능한 좋은 설루션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들도 소비자다. 이들에게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에 지갑을 연다.

유니레버 비누 패키지 (출처: Bloomberg Getty Images)


그래서 앞으로 소개할 디자인 사례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아직 마음에 꼭 드는 단어를 찾지는 못했다. "저소득층 소비자와 저자원이라는 콘텍스트를 고려해 그 솔루션을 찾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말이 너무 긴 것 같지만 내가 뜻하고자 하는 바를 다 포함한 것 같다. 아니다. 솔루션을 찾을 때 경제적인 이득뿐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 그 개인이나 커뮤니티의 발전까지 고려해 지속가능성도 우선시한 디자인이다. 그저 단발성으로 물건을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드는 기술이나 디자인이 그 사용자의 삶에 끼칠 영향까지 앞서 고려하는 것이다.


@Omotayo Tajudeen



더 깊이 있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긴 책 <아프리카로 간 디자이너>를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YES24​ 링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