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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Feb 09. 2020

나의 본능적인 오지랖

공감, 배려, 오지랖.... 적정선을 지키기 너무 어렵다

디자인에서는 공감이라는 개념을 사용자의 마음을 읽는 접근 방법 중 하나로 배운다. 또 서양의 처세술에서도 공감과 배려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화제가 되기도 한다. 글쎄, 우리나라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개념이다. 일단 공감의 요지는 자신의 입장만 세우지 말고, 사람들의 말과 숨은 뜻을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부터 쏟아내기 전에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 그리고 적당한 배려는 세계 어딜 가나 사회 생활을 하며 습득하는 소셜 스킬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왔고 세 형제 중에 둘째이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공감과 배려의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자부한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 입장은 알아서 생각해보는 편이고, 주변 사람 중에 누군가 힘들어하는 모습들 보면 할 수 있는게 말뿐이라도 위로의 말을 보낸다. 내가 누굴 챙겨주고 또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게 날 챙겨주고. 뭐 사람이라면 응당 주고받는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예 다른 문화적 콘텍스트에서 살다 보니 공감능력이 나의 특징 중 하나가 돼버렸다. 팀 내에서 팀원들이 나를 "엄마"와 같은 존재라며 주변을 잘 돌본다고 평가하는 말을 들었다. 살면서 난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푸근한 존재였나? 물론 좋은 뜻이지만 나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닫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일주일간 워크숍을 왔을 때였다. 아프리카 대륙 밖의 여행은 처음인 동료도 있어 나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혹시 공항에 도착해서 기차 타는 곳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기차표는 알아서 잘 구매할 수 있을까? 혹시 길을 잃어도 지나가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영어도 잘하고 아주 잘 알려주겠지만 걱정이 되었다. 내가 네덜란드에 처음 왔을 때 아무것도 몰라 헤맸던 생각도 났다. 그래서 어떻게 길을 찾고 어디로 가야 한다 등등 안내사항을 구구절절 보냈다. 그리고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인터넷도 안될 텐데 호텔엔 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서였다. (물론 한국처럼 택시를 타면 좋지만 네덜란드는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 그 반면에 네덜란드 동료들은 월요일 아침 몇 시에 어디로 오라는 정보만 알려주고 일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나서서 신경을 써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조금 냉정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 일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며 애쓰고 있는 내가 바로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이지리아 팀원들이 돌아갈 때도 너무 친절하고 고맙다며 칭찬을 하는데... 뭐랄까. 이렇게까지 칭찬을 들을 정도인가. 또 칭찬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받고 싶지도 않은데 민망했다. 또, 나는 친절하다는 말보다 냉정하더라도 똑똑하고 자기 일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뭔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던 경험들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경청과 긍정적 리액션의 역효과

나는 내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상대방이 대화를 주도하는 경우라면, 열심히 청자 역할을 해준다. 적절히 반응하며 중간중간 질문도 해가며 경청하고 리액션을 한다. 그런데 한국으로 치면 내가 예의상으로라도 취하는 그런 태도가 이 곳에서는 암묵적인 동의 혹은 아무런 의견이 없어 보이는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점은 상대방이 나의 관심을 느낀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상대방의 기분도 생각해서 적당히 대답하다 보면 자꾸 그 문제의 수렁에 같이 빠지게 될 때도 있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해보았는데. 일단, 할 말은 똑바로 하고, 내 의견을 적당한 때에 내세워야 할 것 같다. 내 경험상 네덜란드에서는 의견 표시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대와 대립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끌려가지 않고 서로에게 건설적인 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적정거리를 넘는 오지랖


또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예의상 혹은 계산 없이 하는 배려가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을 당황시킬 수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서유럽권에서는 나의 의도를 오해받고 필요 이상으로 적정거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직접적인 요구가 없는데 알아서 챙기는 우리나라식 눈치, 호의는 정말 괜한 오지랖이 될 수 있다. 내 콘텍스트에서는 내가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호의를 베풀면 또 호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한국에서라면 내가 이번에 상대를 배려한다면, 상대방도 다음에 나를 배려하겠지라고 지레짐작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아예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그런 콘텍스트가 없으니 돌려줄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도 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네덜란드에 4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어렵다. 어쩔 때는 사람들이 너무 냉정해 보이고, 어쩔 때는 우리나라보다 더 끈끈한 정을 느끼고 감동하기도 한다. 근데 네덜란드에서 만큼은 그냥 직접 표현하고 부딪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혹시 불편하면 말하렴이라고 사족을 붙이며. 그리고 내가 놓치는 부분들도 있을 테니 이 역시 하나씩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바로 눈치 없는 무례한 사람이 되었을 때도 있었다.

이를 아프리카 국가로 출장 갔을 때 자주 느꼈다. 아프리카는 우리나라보다 더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예의와 돌려 말하기도 우리나라보다 좀 더 심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눈치도 없고 원하는 바를 필터 없이 쏟아내는 조금 무례한 사람이 된 적도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반갑게 이름을 부르고 손인사를 하는 외국인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지나친 챙김이 참 부담스럽기도 했다. 매일 저녁 전화로 내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고맙긴 한데, 낮에 방금 보고 전화를 하면 할 얘기가 없어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또 요즘엔 거의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지 전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얜 나한테 왜 이러지' 하는 생각으로 거부감이 들었는데, 나중에 좀 더 친해진 동료와 얘기해보니 그들은 나에 대한 엄청난 호감에서 하는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예의상 하는 인사치레였고 한 번쯤은 내가 먼저 전화로 안부를 물었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게 공감인지 배려인지 오지랖인지 혼란스러운 상황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에서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간 상황이었다. 나이지리아 현지 팀원이 여기는 00가 맛있어 이걸 꼭 먹어야 해 하면서 주문을 하려 했다. 그러자 네덜란드 팀원은 자신은 XX가 먹어보고 싶으니 XX를 먹겠다고 했다. 현지 팀원이 00을 먹어야 한다고 두세 번 더 권유를 했고, 네덜란드 팀원은 끝까지 XX를 먹겠다고 해서 현지 팀원이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래서 나는 나라도 00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주문을 해달라고 했다. 네덜란드 팀원을 보며 '어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시켜주면 먹을 것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바로 꼰대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겠다. 또 나이지리아 팀원을 보며 '왜 이렇게까지 강요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다가, 나도 혹시 그러고 다녔던 건 아닐까 하는 급 자기 반성. 그리고 사실 그 동료의 마음엔 정말 맛있는 음식을 알려주고 같이 먹고 싶은 선의가 더 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또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그 중간에서 내 취향도 아닌 음식을 먹게된 나는 나의 이 어설픈 태도를 탓한다.


또, 프로젝트 마지막 날 나이지리아 팀원 둘에게 점심을 대접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돌아올 교통편이 없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그렇게 멀지 않았다). 나와 네덜란드 팀원은 이 사람을 배려한다며 갈 때 우버와 같은 택시를 불러준다고 말하며 권유해 같이 갔다. 결국 같이 간 그 팀원은 내내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하며 주문도 하지 않았고 중간에 가겠다고 먼저 일어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 처음부터 다른 이유가 있어 가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런 그를 내가 억지로 데리고 갔음을 깨닫고 미안했다. 그 와중에 네덜란드 동료는 "자기가 그럼 정확하게 말을 했겠지. 걔가 괜찮다고 했잖아, 정말 괜찮았을 거야 "라고 말을 했다. 상대방의 태도에 휩쓸리지 않는 네덜란드 동료가 조금 부럽기도 하고, 왜 할 말을 못 하고 빙빙 돌려 말하며 억지로 와 앉아있던 건지 나이지리아 동료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오기 싫다는 말을 못 알아듣고 또 내가 오지랖 부리며 택시까지 불러준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아직도 이런 상황들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찌 됐든 최선을 다해 이런 저런 처세를 하지만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고, 정말 예상치 못하게 고마워할 수도 있고. 아직도 혼란의 연속이다. 하지만, 결론내자면 만국 공통의 공감은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볼  알며 최소한의 배려는   있는 능력인  같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 무조건 동의만 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한번  생각해보며  입장도  생각해보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상대방의 상황과 문화에 맞는 적정 거리를 나부터 지키기.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함부로 평가하거나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묻지 않았는데 나서서 어설픈 배려를 하려 들지 않고, 나도 상대방에게 비슷한 배려를 바라지 않는 것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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