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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Nov 30. 2020

어쩌다보니 5년 차 이방인

네덜란드에 살며 겪은 변화들

    

이젠 너무나 익숙한 카날 풍경

네덜란드에 온 지 어느새 5년 차다. 올해 9월 부로 꽉 찬 오 년이 되었다. 연차는 쌓일 만큼 쌓였는데, 체감상은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시간은 늘 빠르게 지나갔다. 석사과정을 밟은 2년, 그리고 일을 한 2년 반,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진 휴식 반년 정도. 


    지난 오 년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이전의 나보다 물론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경험들도 해보았다. 그렇다고 발전만 한 것은 아니고, 생각보다 부진한 부분들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변화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렇다.


1. 극단적 내향인에서 중도의 내향인으로

요즘 대세인 MBTI 성격 테스트를 나도 주기적으로 해본다. 그리고 이 곳에 오기 전과 비교하면... 극도로 내향적이던 내가 외향성을 좀 더 획득했다! 나는 80:20 정도로 내향적이었는데 이제 60:40 정도다. 꼭 네덜란드여서 외향적이 되었다기보다는  내 안전지대를 떠나 낯선 곳으로 와 살아서 온 변화인 듯하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배경, 인맥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만들고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들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리고  굳이 앞에 나서지 않아도, 능력을 뽐내지 않아도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에 익숙했던 나였는데,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 크게 내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기에 생존을 위해 바깥 세계로 점점 뻗어 나간 것 같다. 그리고 혼자인 시간은 늘 충분하다. 내가 나서서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으면 어차피 난 혼자다.  그렇기에 난 충분히 내향적인 나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외향성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네덜란드 인에 비해서는 아니다... 어쨌든, 내 본성을 거스르며 억지로 노력한다 생각했는데 내 성향이 바뀐 것은 의외다. 그래도 뒤늦게 성장통을 겪으며 성향까지 바꾼 나를 칭찬해. 


2. 겉모습은 무채색의 심플한 스타일로

외양에도 변화가 있었다. 5년 전의 나에 비해 나이와 직업이 바뀌었으니 프로페셔널해 보이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그 외에도 여성적인 스타일을 덜 입게 되었다. 그 대신 중성적이고 무채색의 심플한 옷들로 많이 바뀌었다. 동양인, (비교적) 어린, 여자의 조합으로 사회적 약자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세 보이려는 발버둥이 기도 하고. 패션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실용적인 옷차림을 추구하는 이 곳 문화에 어우러진 것도 같다. 미팅을 할 때에도 면접을 볼 때에도 정장 차림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세 보이기 위해 포멀 한 옷을 갖추어 입는 편이다. 화장도 색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로드샵에 가서 유행하는 색의 화장품을 사서 시도해보는 게 나름 취미였는데 그건 아쉽다. 하지만 아침에 나가기 전 준비 시간이 매우 단축되었다는 것은 좋다. 


3. 넓진 않아도 밀도 높은 관계들 

한국에서 대학 이후의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해 비교할 순 없지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밀도 높은 관계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족들이 해주던 역할을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나눠서 한다. 한국이었으면 친구들에게 하지 못했을 얘기들과 부탁들도 하게 된다. 자주 보진 못해도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희로애락을 함께 겪으며 한층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숨기고 싶은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함께한 시간들은 강렬한 추억이 되었다. 


4. 혼자 먹고 사는 생존력이 강해졌다! 

5년 전에 처음 왔을 땐. 밥도 한번 안 해보고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잘 모르고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사서 쓸데없는 돈도 많이 썼다. 이젠 웬만한 건 해 먹는다. 내 살림도 조금은 꾸렸다. 내가 날 안 챙기면 누가 날 챙기겠어하며 나름 부지런히 해 먹고, 치우고, 잘 자고 있다. 그리고 추위에 강해졌다. 이전에 살던 집이 오래된 집이라 추운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추위는 괜찮다. 그리고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바람에 자전거가 휘청거려도 자전거도 잘 탄다. 


5. 무표정이 기본 표정이 되었다

이건 조금은 씁쓸한 변화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난 늘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여기 와서는 잘 안 웃는다. 늘 경계 태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웃을 이유가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특히 길에서 말 거는 사람들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건달 같은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해 무표정으로 앞만 보고 다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화들도 있었다..


1. 유학의 목표가 바뀌었다

내가 유학을 계획하며 그렸던 목표는 석사 이후에 박사로 바로 진학하는 것이었다. 석사 졸업 논문을 쓰며 지도 교수님과 연을 맺어 프로젝트 참여 연구원으로 계속 연구를 할 수 있었지만. 박사 과정에 대한 욕심은 많이 줄었다. 멋모르는 학생의 관점에서 박사 학위는 대단해 보였다 (지금도 매우 대단하지만) 학위를 받는 그 자체가 나를 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닮고 싶은 점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이 부러웠다. 학위와 별개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고 싶고 사회에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한 다음 선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 그렇다. 끝나지 않는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꿈꾸던 유학도 했고,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었고. 이쯤 되면 진로 고민은 더 안 할 줄 알았는데. 20대를 더 치열하게 보냈어야 했던 걸까. 진로 고민은 끝이 없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조금 파악이 된 것 같은데, 못하는 것들도 너무 분명하게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경제적인 문제와 비자 같은 현실적인 이유들이 뒤늦게 발목을 잡는다.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5년 후, 10년 후에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길 바란다.


3. 현지 적응의 노력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유학 오기 전에는 현지에 동화되어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다. 그저 이방인 아이덴티티를 하나 더했을 뿐.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살고, 내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 많은 변화가 있었었다 해도 ㅇ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너무 운명론자 같나 싶다. 

유학 초반에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에 처음 온 같은 외국인 학생들이기에 함께 새로운 경험들을 시도해보았었다. 주변 도시 여행도 가고, 같이 취미도 배워보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줄었다. 그리고 주어진 일만 하기에도 벅차 빠르게 포기했던 것 같다.  5년이 지나며 주변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자기 나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더 이상 관심사가 맞지 않아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또 다른 기회들로 만나게 된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로 올해는 내 활동이 한껏 더 위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내 활동을 온, 오프라인에서 더 늘려보자는 다짐도 해본다. 


4. 한국에 대한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 

올해 여름에 한국에서 4달을 꼬박 보내고 왔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었다. 오랜만에 왔기에 가족, 친구들이 소중한 시간들을 선뜻 내어준 것도 크다. 하지만 내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잘 통하는, 별거 아닌 얘기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 그 옆에 있음의 소중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 그리고 내 사람들의 삶에 내가 부재해있음을 느낄 때 정말 아쉽다. 한국에 있어도 다들 바쁜 일상이니 자주 못 보겠거니 생각했지만, 가까움이 주는 이점은 생각보다 컸고 그만큼 떨어져 있을 때 그리움도 크다. 예상은 했으나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그리고 이젠 한국에 돌아가자니 여기가 그리울 것 같고. 이거 참 어렵다.


그래서 한달 남은 2020년은 글쓰기로

세상에. 새해가 한 달 남았다. 올해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힘든 시기였다. 코로나에 나름 익숙해진 세상이다. 그리고 난, 앞으로 이방인 생활을 얼마나 더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단계로 글쓰기를 열심히 해보려 한다. 나는 글을 쓰며 내 기분을 끌어올리는 편이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머릿속이 복잡하고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어딘가에 글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면 가라앉았던 기분을 중립에 맞출 수 있다. 그리고 내 나라 말로 글을 쓰며 이방인의 향수를 달래려 한다. 5년차 이방인의 푸념어린 단상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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