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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05. 2020

모빌리티가 평등한 나라에 산다는 것

자전거의 천국에 살며 체감한 모빌리티의 특권

남자 친구가 유튜브 비디오를 보여주며 열변을 토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라고 하면 코펜하겐을 먼저 떠올리는데,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사실 자전거 타기 최적화된 도시, 자전거의 천국은 네덜란드라고. 유튜브 비디오는 코펜하겐이 그다지 자전거 친화적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영상).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다. 자전거 천국, 자전거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뭐라고. 코펜하겐에서 자전거를 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거리의 느낌은 쾌적했다. 체감상 암스테르담보다 전반적으로 더 깨끗하고 사람들도 덜 붐볐던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치, 불고기 같은 대표 음식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느낌이려나.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운하와 자전거


뭐, 다른 도시와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네덜란드의 자전거 도로는 자랑할 만하다. 자전거 타기 좋다는 것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자전거가 자연스레 녹아있다. 일단 이동 수단이라 하면 디폴트, 기본값은 자전거다. 남녀노소 할 것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간다. 처음엔 나이가 한 70대는 넘어 보이는데 너무나 정정해 보이는 모습이 생소할 정도였다. 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 수레에 아이들을 태워 등하교를 시킨다. 출퇴근 시간에 자전거 도로에서 한 줄로 쌩쌩 달리는 직장인들도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암스테르담 자전거 도로 (출처: Thecyclingdutchman)


암스테르담 등 대부분의 도시에는 보행자, 자전거, 자동차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공존한다. 자전거 도로도 사람들의 출퇴근 동선을 고려해 계획되어 있으며 4차선 도로나 교차로도 자동차 운전과 다를 바 없다. 처음엔 교차로에 자동차 옆에 멈춰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찻길 한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아 어찌나 떨렸는지. 하지만 자전거 도로표시와 신호만 잘 따라가면 위험할 일이 전혀 없다. 그리고 몰랐는데 코펜하겐과 비교했을 때, 중요한 요소는 거리에 나무가 많다는 점이다. 보기에도 좋지만, 여름에는 자전거 통행객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보호막이 되어준다. 이런 도시 계획의 디테일들이 경험의 차이를 만든다.

암스테르담에 대중교통 중 하나인 페리 -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있다 (출처: Thecyclingdutchman)


이 곳에 몇년 살다보니 이젠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잘 다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다 다른 나라로 여행이나 출장을 가게 되면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이 답답함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익숙치 않아 느끼는 불편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동성'에 제약이 걸려 그렇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누리는 특권 중 하나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특히 언어도 안 통하는 곳에서 대중교통을 물어가며 찾아서 타야 하거나, 별다른 수단이 없어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야 하거나 하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안전의 문제와 교통수단의 부재도 더해졌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국인의 모습으로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택시도 하루 전날 예약해두어야 했는데, 나의 동선을 반드시 미리 계획해두어야 했다. 택시를 타도 마냥 편하지는 않다. 엄청나게 차가 밀려 몇 시간 동안 택시 안에 앉아있기도 한다. 현지인들에게도 그렇다. '이동성'은 권력이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음은 경제적 여유의 상징이자 이동성의 자유를 말해준다.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있으니 말이다. 이 권력의 최하층이라면, 많은 제약이 걸린다. 꼭 필요한 상황에도 움직일 수 없다. 대중교통을 탈 돈이 없으면 몇 시간이 걸려도 걸어 다니기도 한다.




그에 반해 네덜란드는 모빌리티는 더 이상 특권이 아니다.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든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네덜란드는 지형이 평평하여 오르막길이 거의 없어 노약자들도 자전거로 다니기 쉽다. 


특히 경제력에 차이가 나도 모빌리티의 접근성에는 크게 차별이 없다. 물론 경제력이 더 높으면 더 비싼 자전거를 살 수는 있겠다. 하지만 어쨌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두 팔다리만 건강하면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자동차처럼 세금, 유지비, 주차료가 드는 것도 아니니 자전거만 있으면 거의 무료다. 중고 시장도 활발해서 굳이 새 자전거를 사지 않아도 10만 원 내에서 괜찮은 자전거를 살 수 있다.

평평한 나라 네덜란드 - 도심에도 오르막길은 거의 없다 (사진: Off to the Netherlands)


네덜란드는 나라도 작고 도시도 작다. 한 도시에서 자전거로  30분 이내면 이곳저곳을 다 다닐 수 있다. 특히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계획한 동선으로 다닐 수 있다. 버스를 탄다면 고려해야 할 버스 시간, 정류장과의 거리, 막차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도어 투 도어 (Door to Door) 이동이 가능하다. 자전거 천국답게 자전거 주차장이 잘 갖춰져 있어 가능하다. 주차할 때 드는 시간도 따로 없고, 튼튼한 락만 구비하면 어디든 세워두고 볼일을 보면 된다. 특히 어느 도시나 구시가지 쪽으로 가면 자동차로 접근이 불가능한 구역과 일방통행인 도로가 많다. 자동차로 가면 뺑뺑 돌아야 하기도 하고, 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기도 한다. 자전거로 가면 오히려 가동성이 더 붙는다. 내가 이동하고 싶은 장소 1에서 장소 2로 바로 이동 가능하니 효율적이다.


물론 역에 가까우면 편리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큰 메리트는 아니다. 오히려 기차, 트램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기피하기도 한다. 기차로 다른 도시로 출퇴근을 하더라도, 역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면 큰 차이는 없다. 물론 이 역시 네덜란드의 도시 규모와 생활 반경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세권 프리미엄이 없으니 집을 구할 때도 고려 사항이 하나 줄어든다.


요즘엔 특히 코로나로 대중교통을 타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탔다. 여기는 9월 이후로 확진자 숫자가 치솟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자가용이 물론 더 안전하겠지만... 자가용을 사기 위한 경제력이 없거나 운전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으니 또 다른 이점이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타지 않아도 된다 (사진: Ketut Subiyanto)


지금은 코로나로 이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평소에는 하루에 적어도 자전거를 30분은 탔던 것 같다. 운동이 참 귀찮고 싫은 내게 이것은 큰 이점이자 특권이다. 지금도 꼭 어딜 가지 않더라도 자전거 끌고 한 바퀴 돌고 오면 좋은 운동이니 그것도 좋다. 실천은 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환경친화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환경친화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면 더 환경친화적이야!'라고 하면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만한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고, 이동해야 하는 곳이 멀기도 하고, 자전거를 세울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내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하기 힘들다. 필요를 위해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매번 난 환경친화적이라며 뿌듯해하진 않는다. 이런 단순 비교는 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환경친화적 선택지를 실제로 선택 가능하게 해주는 상황이 좋다. 아무리 잘 알아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뭐, 이런 좋은 점들이 있으니 마냥 찬양하자며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이 곳의 자전거 도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암스테르담이나 코펜하겐이나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도시들이고, 역사가 오랜 구도심을 보존하기 위해 그리고 자동차 양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무작정 더 늘릴 수 없으니 더 자전거를 장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 내 이동은 자전거로 가능하지만, 도시 간 이동을 위해서는 기차나 차를 타야 하고, 기차표가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이동성이 주는 편리함과 평등함은 값을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그리고 자전거 외에도 모빌리티에 있어 더욱 평등해지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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