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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14. 2020

서른이 되니 어때?

뒤늦게 30대를 준비하며 

올해 만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는 벌써 서른이 된 지 한참이지만, 외국에 나와있으니 외국 방식을 따른다며 20대의 마지막을 실컷 즐겼다. 이제 올해는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이었다. 


서른이 되니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여기도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에 꽤나 큰 의미가 담겨 있나 보다. 솔직한 심정은 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감정이 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 생일을 맞아 파티를 하고 축하받는 게 조금 남사스럽게 여겨졌다는 게 그나마 달라진 점일까? 그 외엔 담담하게 이 숫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친구에게 서른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선물로 받았었다. 어쩌다 보니 아직 읽진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떨떠름했다. 이거,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걸까? 서른을 맞이한다는 게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거였나? 그렇게 당황하던 것도 잠시,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가 올해도 거의 막바지다. 30대의 시작은 코로나까지 합세해 그다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코로나의 여파 중 좋은 점 하나는 올해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자아성찰'을 참 많이도 했다. 돌이켜보면 20대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시기였다. 스무 살 시작은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이었다. 성인이 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새로운 곳에도 가보았다.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내린 결정들도 생겼다. 20대 중반은 흔들림이 많은 시기였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뗐다가 유학을 준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름 충실하게 후반기를 준비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때는 흔들리고 불안해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 후반기는 유학, 해외 생활이라는 막연히 바라 왔던 꿈을 실천에 옮겨 네덜란드에서 보냈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은 여기 삶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시야도 넓어지고 다양한 경험을 더 해보았으니 좀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맞는 결정을 한 건지, 지금 이 길이 최선의 선택지인지 확신이 없어 계속 마음을 졸여왔다. 


@Vasanth Babu


올해 들어 문득 내가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했던 길들에 대한 생각이 많았었다. 이게 바로 서른이 되며 오는 인생의 현타인가. 다른 학교로 대학원을 갔으면 어땠을까,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다른 전공을 하면 어땠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정들과 더불어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후회라는 감정이 이렇게 무겁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과거의 일에 미련 두는 것만큼 미련스러운 일이 없는데... 이렇게 자꾸 뒤돌아보는 게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는 암시인 것만 같아 더 마음이 불편했다. 그만큼 그때 충실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나 자신을 탓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에 대해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리고 특히 내 옆의 사람들과 내가 사는 현재 삶에 아주 미안한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내가 했던 선택들, 거쳐온 경험들에서 난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가진 사소한 습관과 취향들까지도 전부 다. 그러니 내가 다른 길을 걸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와 내 삶을 사랑한다면 과거를 돌아보진 말자.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앞으로 올 10년을 어떻게 보낼지에 더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30대에 올 변화들과 새로운 경험들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잘 간직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우고, 앞으로 잘 꾸려나가고 싶다. 그리고 몇 년 새에 또 내 취향이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옆도 잘 지키고 싶다. 한때 비슷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도 점점 다른 삶을 살아가고, 그에 따라 관계의 방식도 변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더 단단해지고 싶다. 흔들림 많던 시기를 지나 이제 단단하게 내가 서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지금 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 난 꿈이 많다. 마냥 이상만 좇는 것은 아닌가 불안할 때도 많았지만, 이상 없이 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난 내 세계를 깨고 나가는 변화를 다시 한번 겪고 싶다. 변화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이후의 나는 더 나은 사람, 내 이상에 한 발짝 더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내키진 않지만 그런 고통도 내 삶의 일부라 인정해줄 것이다. 

@Pixabay

또 십 년이 지나 이 글을 읽는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10년 후에는 지금과는 결이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진로 고민은 좀 더 발전된, 차원이 다른 고민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고민들은 그땐 그랬었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일들이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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