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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12. 2020

집에서 카페 ASMR을 듣는 일상

카페 문 닫은 지 3개월째, 그 부재를 견디는 방법

요즘 들어 집에서 음악이나 유튜브를 계속 틀어놓고 있는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나 일상 브이로그 같은 배경음이다. 별 자극 없는 그냥 맹숭맹숭한 느낌이 좋다. 주의를 기울여서 보지 않아도 되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적당히 어우러지는 배경음악과 소리도 듣기 편하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습관이다. 조용한 일상에 소리로 변화를 준다. 그러던 중, 최근 카페 배경음 ASMR에 푹 빠졌다. 원래는 카페 분위기를 내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틀곤 했는데 이건 아예 카페 소리다. 배경엔 음악이 잔잔히 깔리고, 카페의 잡음, 커피빈 그라인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사람들 말소리, 가끔 들리는 의자 끄는 소리 등이 함께 섞여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런던의 카페, 야외 카페, 도쿄 시내의 카페, 조용한 카페, 호그와트의 카페 등등. 하나를 골라 적당한 크기로 틀어두면 조용한 집에 갑자기 북적북적한 느낌이 스며든다. 공간이 꽉 차는 기분이다.


@Helena Lopes

생각해보니 카페에 참 자주 다녔다. 주말 중 하루는 카페에 가서 오후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친구를 만나거나, 밀린 작업을 하거나, 그냥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평일에도 오피스에 있다가 집중이 잘 안되면 훌쩍 카페로 갔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커피 향을 맡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목적에 따라 내가 가는 카페도 정해져 있다. 분위기가 좋아 그냥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게 힐링인 동네 카페. 누굴 만나기도 좋고 그냥 마실 나가기도 좋다. 

작업할 땐 노트북 코드를 연결한 콘센트가 여러 개 있고, 책상 높이가 편한 곳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괜히 동기부여가 돼 작업도 더 잘된다.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 유럽에 산다는 게 실감이 나는 공간도 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꼭 챙겨 가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스타벅스가 거의 만능이었던 것 같다. 동네에 하나씩 있어 가기 편하고, 친구 만날 때, 그냥 혼자 작업할 때 언제든 적합한 공간이다. 

@Snapwire/ Pexels

여기에 스타벅스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기차역이나 번화가에 하나씩 있어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한국처럼 아늑한 공간의 느낌이 덜하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다른 곳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는 재미가 더하다. 커피 한잔 값으로 누군가의 취향과 분위기가 듬뿍 담긴 공간을 두세 시간 맘 놓고 즐길 수 있다니. 카페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소박하면서도 럭셔리한 취미였다. 


카페, 레스토랑이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지 벌써 세 달째다. 원래는 올해 상반기부터 코로나가 심해지며 정부 규제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상황이 좋아짐에 따라 여름쯔음 다시 카페 문을 열었지만, 9월부터 다시 닫은 상태다.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니 언제쯤 다시 열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 이 시국에 카페에 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사치스러운 불평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리운 일상 중 하나다. 





내가 사는 집은 8평이 안 되는 오피스텔 같은 곳이다. 혼자 살기에는 딱이지만 꼭 필요한 가구만 갖춰져 있다. 군더더기를 들여놓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 집은 내가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다. 또, 렌트해 사는 집이기 때문에 내 취향대로 꾸미기가 쉽지 않다. 벽 색을 바꾸거나 액자를 거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다른 공간을 열심히 찾아다닌 것 같다. 내 공간에서 느끼는 부족함을 내 취향에 맞는, 그러면서도 다채롭게 여러 공간들을 찾아 향유했다. 그렇다고 카페에 가서 정말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배경으로 내 일상을 보내는 게 익숙했다. 그냥 평범한 일상 - 메일을 확인하고 책을 읽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등을 특별한 공간에서 나눠 보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걸 집에서 하려니 더 허전한가 보다. 


@Karolina Grabowska

그래서인지 카페를 가지 못하고 나서 내 공간을 좀 더 꾸며보았다. 가구 배치를 새로 해서 나름 생활공간과 자는 공간을 분리했다. 예쁜 소품도 들이고 식물도 더 장만했다. 짐도 줄였다. 안 입는 옷도 정리하고, 안 읽는 책은 치워버렸다. 눈에 보이는 짐들이 줄어드니 집도 좀 더 넓어 보인다. 그래도 제일인 방법은 카페 소리를 배경으로 깔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난 카페에 있다는 분위기를 듬뿍 내며 커피를 마신다. 이 소리에 중독된 건지 이 배경음이 은은히 들려야 집중도 더 잘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사는 건물 1층에 공용 커피머신이 훌륭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대충 겉옷을 걸쳐 입고 1층에 내려가 커피를 받아 온다. 어떤 날은 뜨거운 물을 섞어 아메리카노처럼 마시기도 하고, 그냥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기도 하고, 카푸치노에 시나몬 가루를 뿌려 마시기도 한다. 나름 이런 변화를 주며 매일 조금 다른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런 하루들에 또 익숙해져 간다. 


코로나로 인한 규제 속에 새로운 일상 중 하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친구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산책이다. 날씨가 좋은 날 바깥에서 만나면 일단 기분 전환에 좋다. 현재 규제는 야외에서는 세명까지 동행을 허용한다. 그래서 둘, 셋 씩 소규모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눈에 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잔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더 즐겁다. 커피 맛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이 부디 코로나를 잘 견뎌줬으면 하는 응원의 의미도 있다.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백신이 도입되더라도 내년에도 한참은 이어져 간다는데... 안 그래도 이 곳의 겨울은 춥고 긴 밤은 쓸쓸하다. 카페 소리를 들으며 또 분위기를 바꿔본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카페 음악을 깔고 생동감을 즐겨봐야지. 

@Tirachard Kumtan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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