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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15. 2020

정성 들여 빚어낸 하루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

오늘 밤 자정을 기점으로 네덜란드에는 세 번째 락다운이 시작된다. 필수 업종 (식료품, 의료 관련) 외의 모든 상점, 식당, 서비스 업종이 문을 닫는다. 신규 확진자 수가 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니 심각하긴 심각한 상황이다. 워낙 외출을 자제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에 내 일상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3월에 있었던 첫 번째 락다운 때는 아니었다. 내 일상이 무너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답답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 무언가 거대한 힘에 휩쓸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무력감을 느껴본 것은 태어나 처음 한 경험인 듯하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시내는 한산했다. 환한 대낮에 유령 도시처럼 활기가 사라진 거리를 보며 두려움은 더 커졌다. 조심하며 산책은 할 수 있었지만 혼자 바깥에 나가는 것도 꺼려졌다. 매일 환자수가 폭증한다는 뉴스에 불안해졌다. 한국처럼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람이 무서웠다. 옆에 지나가는 행인도 슈퍼마켓의 계산원도 믿을 수 없었다. 어딜 가도 실체는 없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자꾸 내 일상을 옭아맸다.


@Jesse Yelin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것도 익숙해졌다. 전면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가거나 가벼운 산책 외에는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하는 일은 연구직이다 보니 하는 일 자체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혼자 살기 때문에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만큼 지인들, 동료들과 연락을 더 자주 주고받으며 서로를 확인했다. 여러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보류되었다는 소식에 불안함을 감출 순 없었다. 물론 더 큰 타격을 입은 사업체들,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 역시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코로나에 대한 뉴스와 소셜 미디어를 계속 확인하다 보니 피곤하고 더 혼란스러워졌다. 의식적으로 미디어를 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반년 넘게 비슷한 생활을 유지해왔다. 중간에 한국을 다녀왔을 때만 제외하곤, 여기서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다. 3차 락다운을 맞이하여 이 사태가 더 장기화되면 또 흐트러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꽤 안정적이다.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하루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전에는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내 루틴이 존재했다. 아침이 되면 씻고 나갈 준비를 했고, 오피스에서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었고, 퇴근을 하고 오면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그런 외부의 영향이 적어지니 내 루틴의 의미가 없어졌다. 나갈 준비를 하지 않으니, 하루 종일 씻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언제든 내가 배고플 때 먹으면 되고... 물론 아직도 큰 틀은 존재하지만, 내 루틴의 기준점이 사라지니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허겁지겁 뭔가를 계속 하긴 하는데, 중심이 없이 위태롭게 서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데드라인을 앞두었을 때 한 달을 폐인처럼 생활했다. 그러고 나니 내 중심을 세우고 내 생활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내 소중한 하루마다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장기적인 계획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하루하루에 더 충실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 루틴을 만들고 하루를 보내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한주가 가고 한 달이 갔다. 


@Olenka Sergienko

현재 내 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은 의식주다. 이건 시간적 여유가 더 생겨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먼저, 집에 있어도 옷을 거의 매일 갈아입는다. 일할 때 잠옷을 입는 일은 없도록 한다. 하루 종일 집에서 나가지 않더라도 내 기분이 전환된다. 특히 눕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건 '식'.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다. 내가 먹을 한 끼니 정성을 들이고 또 즐겁게 먹는다. 가끔은 친구를 초대해 특별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베이킹도 간간히 하고 있다.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니 '주'도 중요하다. 집에서도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장비를 새로 구비했다. 또 짐 정리를 하고 내 취향에 맞는 소품도 몇 가지 마련했다. 내 삶의 기본에 충실하려 해 보니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나 하나 몫은 내가 책임진다는 의무감도 있다. 그래도 즐겁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움직인다.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유튜브 비디오를 따라 하거나 무엇이든 의식적으로 해본다. 난 정말 '정'적인 사람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 종일 앉아있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며 게으른 내 몸을 깨운다. 


또, 한국에 다녀오며 느낀 것은 내가 새로운 경험에 매우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일상은 단조롭고 외부의 자극이 없다. 모임이나 이벤트에 갈 일도 없고. 그러니 매일매일이 비슷하다. 그래서 매일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을 해 뭔갈 새로 사기도 하고, 새로운 산책로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온라인 세미나나 강의도 찾아들어본다. 영화, 책도 다양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작은 변화일지라도 오늘을 또 잘 보낼 수 있는 활력소가 되어준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까운 지인들은 간간히 만나고 있다. 하지만, 적당히 아는 사람들은 정말 볼 일이 없다. 내가 아쉬운 사람들에겐 연락을 해본다. 온라인으로라도 안부를 전하고 연결되어 있을을 느낀다. 가까운 사람들과도 자주 대화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카톡은 자주 해도 영상통화는 거의 하지 않았었다. 이젠 친구들에게 시간을 내어달라 해 약속을 만든다. 내 하루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넣어두면 일찌감치 기대감에 기분이 벌써 좋다.  


@Quang Nguyen


정성 들여 계획한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나면 성취감이 든다. 제약이 많은 생활 속에 성취감을 느낄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내가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참 중요한 요소였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소한 장치들을 만들어 둔다. 산책을 나가는 것도,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도, 아침을 챙겨 먹는 것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머리를 감는 것도 전부 뿌듯한 일들이다. 그렇게 오늘을 성취하고 나면 다음날도 성실하게 보낼 원동력이 생긴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매일을 정성스레 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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