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딧 Dec 16. 2020

엉성한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두주전 급하게 만든 트리

리스마스 두 주 전 만든 엉성한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 두 주 전 갑자기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다. 사실 집 크기가 작아 트리는커녕 가구 하나 더 들일 자리도 없기에, 트리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지인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여분의 트리가 하나 생겼다고 해서 얻어오게 되었다. 아마 코로나라 사무실에 트리를 설치하지 않게 되어 나눠준 듯하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온 크리스마스트리는 진짜 살아 있는 나무다. 높이는 내 키만 하고 상쾌한 나무 향이 물씬 난다. 밑동이 댕강 잘려 있어 나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 가족들과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며보긴 했지만, 진짜 나무로 트리를 하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서투르게 준비를 했다. 트리 전용 받침대가 따로 필요하다는 것도 나무를 받고서야 알았다. 받침대로 밑동을 잘 고정하고 세운 후, 물도 때때로 계속 줘야 한다. 이 받침대도 신세계다. 가격대가 2-3만 원부터 10만 원 넘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트리를 잘 관리해줘야 크리스마스 넘어까지 생생하게 잘 버틴다고 한다. 그 와중에 트리를 세우려 했더니, 뾰족한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그냥 덥석 받아오는 게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트리 장식인데 이거야말로 큰 문제다. 왜냐하면 난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장식품이라곤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급하게 사려고 보니 내 맘에 쏙 드는 게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들처럼 꾸미고 싶은데, 장식품 하나하나가 다 돈이구나! 이제 깨달았다. 며칠만 지나면 엄청난 떨이로 할인을 할 텐데 지금 지갑을 열기엔 아깝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싼 장식품을 사자니 내 기대에 너무 못 미친다. 인터넷으로도 보았지만 선택은 어렵다. 하나하나 고르자니 귀찮고, 배송비도 추가로 든다. 그리고 트리의 전체적인 느낌은 원하는 바가 있는데, 장식품 하나씩은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세컨핸드 샵에도 가보았는데,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그런지 예쁜 건 이미 다 나갔는지 물건이 별로 없다. 더 일찌감치 준비를 해뒀어야 하는데.



그러다 아주 큰 변수가 생겨버렸다. 네덜란드 상황이 악화되면서 필수 상점 외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이다. 그냥 트리만 달랑 둘 수도 없고, 이거 어떡해야 하나? 당황스럽다. 급한 대로 인터넷으로 사야 할 것 같긴 한데... 망설이던 차였다. 우연히 세컨핸드 샵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남아있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가게 앞에 내놓았다. 어차피 가게 문을 닫게 되었으니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는 배려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괜찮은 게 있나 열심히 살펴보았다. 상태가 괜찮은 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색색깔의 구슬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산타 장식, 반짝이는 별장식을 몇 개 찾았다. 상태가 썩 좋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트리에 감아 둘 조명도 하나 얻었다. 내가 생각했던 트리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 올해는 이 정도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설프게 완성된 트리

그동안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해둔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데에는 실용적인 이유가 크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함께 이 트리를 보고 즐길 사람들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해놓으면 당연히 예쁘고 즐겁겠지만, 나 혼자 보는데 굳이 이런 수고와 돈을 들일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트리를 하려고 보니 이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불러 트리도 자랑하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동기도 더 강해진다. 올해는 코로나로 힘들겠지만.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매일 보며 즐길 테니 그것도 좋다. 그리고 내년부터 예쁜 장식품을 하나씩 수집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후의 세일에도 기웃거려 보고. 여행지에서, 세컨핸드 샵에서, 소품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예쁜 장식들을 하나씩 모아두어야겠다. 장식 하나하나 스토리를 남기고 싶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특별한 트리를 꾸밀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는 조금 엉성하지만, 나의 새로운 '전통'의 미약한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성 들여 빚어낸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