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한 예민함에 대한 고백을 듣고 -
일 년 정도 오피스를 공유한 동료가 있었다. 같은 팀 소속은 아니라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매일 마주 보고 앉으며 꽤 가까워졌다. 그러다 동료는 다른 사무실로 옮겨갔지만, 그 후에도 자주 연락하며 지냈다. 그리고 코로나로 거의 일 년을 못 보다가 오랜만에 만났다. 한 때 매일 보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오랜만에 마주 앉았지만, 개인적인 공간에서 만난 건 처음이라 그런지 마음은 더 편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동료가 말했다.
'사실, 나 많이 예민한 편이야. 네가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꽤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무딘 건지, 동료가 티를 내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동료 말로는 본인이 많이 예민해서 업무 중에 흐름을 깨는 일이 생기면 참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며 얘기해 주었다. 우리가 쓰던 오피스는 세 명이 같이 앉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다른 한 명이 의미 없는 소음을 불규칙적으로 내거나, 갑자기 혼잣말을 하거나 잡담을 건네 신경이 꽤나 쓰였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고...
아무튼 동료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재택근무를 시작된 지도 일 년이 다돼가는데 이제 와서 그 사람 험담을 굳이 꺼낼 이유도 없고.
'몇 번 두고 보다가 결국 내가 OO에게 말했거든,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책상을 두드린다거나 하는 건 조심하자고. 그리고 같이 얘기하는 건 언제든 즐겁고 좋지만, 일에 관련되었거나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점심 먹을 때나 커피 타임 때 얘기하자고 부탁했어.'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동료는 방해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문제는 해결되었다.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의도한 것보다 더 조심스레 행동하는 OO의 모습에 이 동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OO가 나한테까지도 매우 조심하는 것 같아 자기의 예민함이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는 거였다. 나는 뭐, 그 동료가 예민한 건 둘째 치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결론적으로 OO과 이 동료도 잘 지내고 있으니 이 사건도 별 일도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과연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떤 액션을 취했을까, 무슨 행동을 하긴 했을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 아마 난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것. 이런 일들이 그렇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번 뭔가가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점점 더 신경을 쓴다. 처음엔 왜 저러지 하는 정도이다가 나중엔 짜증이 나고 불만이 쌓인다. 그러면서도 에이, 신경 끄자,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얘기하며 참아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계속 기분만 상하고, 그러다가 OO의 다른 단점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극도로 못 참을 정도가 돼서야 말을 한다. 나는 안다. 참고 참다가 건네는 말은 아주 날카롭다. 하지만 그쯤 되면 애써 좋게 말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뾰족하게 날이 선 말에 OO는 '이게 뭐 별거라고 저렇게까지?'라며 황당할 수 있다. 이전까지 별문제 없이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문제를 만드는 듯해 나는 어렵게 말해놓고도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빙빙 돌려 말했을 것이다. 돌리고 돌려서 겨우 던진 말을 듣고 OO는 '?'이다. 뭐가 문제인지, 무엇을 어쩌라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다. 알아듣지 못하니 OO의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나는 실망할 것이다. 왜 말을 해도 몰라주는 거냐며 억울함까지 더해진다. 그렇게 OO는 배려가 없어도 아주 없다고 맹비난을 하며 (마음속으로만) 끝장을 본다.
그러고 보니 이 예민하다는 동료의 대처는 아주 훌륭해 보인다. 이 나이를 먹고도, 외국 생활 몇 년을 하고도 나는 아직 잘 못하는 어서 티브(Assertive)한 커뮤니케이션이다. (Assertive가 우리말로 무엇인지 찾아보았는데 아직 적당한 단어가 없나 보다.) Assertive 한 소통은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열린 마음으로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권리와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내 권리, 요구, 개인 영역을 지키며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Pipas & Jaradat, 2010). 그 방법이라 하면 이론은 어렵지 않다. 내가 말하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표현한다 (Positive Psychology.com).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확실하게 잘 전달하라는 뜻이다.
챗지피티의 팁!
보다 단호해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용적인 팁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인식하기: 자신의 감정과 필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이러한 자기인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불편한 감정이나 개인적인 경계가 침범당할 때 인식하세요.
"나"를 중심으로 하는 표현 사용하기: 생각이나 우려를 표현할 때 "나"를 중심으로 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소유하세요. 예를 들어 "나는 ...라고 느끼는데" 또는 "나는 ...라고 생각합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일반화하거나 타인을 비난하는 대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청취 실천하기: 다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그들의 관점에 진심으로 관심을 표현하세요. 이는 존중을 나타내고 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해를 확인하기 위해 들은 내용을 되돌려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명확한 경계 설정하기: 명확하게 개인적인 경계를 정의하고 단호하게 전달하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이 허용되는지, 허용되지 않는지 알려주세요. 경계를 주장할 때 단호하지만 예의를 갖추고, 일관성 있게 적용하세요.
자신감 넘치는 신체 언어 사용하기: 신체 언어로도 단호함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똑바로 서거나 앉아, 눈을 마주치며 적절한 제스처를 사용하세요. 명확하고 자신감있게 말하고, 구부정하게 하거나 꼼짝거리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신체 언어를 통해 자신감을 내보이면 단호함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단호한 대응 연습하기: 단호한 대응을 연습하기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롤플레이해보세요. 이를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필요성을 표현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단호한 의사소통을 연습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전문적인 코치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단호해지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며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단계부터 시작하고 시간을 투자하여 단호함 기술을 점진적으로 향상시켜 나가세요. 단호함을 통해 자신감을 향상시키고 의사소통을 개선하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상기된 팁은 일반적인 제안이며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개별적인 상황과 개인적인 스타일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소통의 장점은 내 입장만 생각하며 상대방을 비난하지도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별것도 아닌 일로 참고 참으며 내 인내심을 시험할 필요는 없다. 또, 상대방이 날 배려하지 않아 이런 행동이나 말을 한다고 일찌감치 단정 짓는 것은 내 오만일 수 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이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쉽다. 어른 대 어른으로, 인격 대 인격으로 소통하면 된다. 여기엔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더라도 우리에겐 이해와 수용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괜히 공격적(혹은 수동 공격적)인 태도를 꺼내 들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다.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내가 주변에 두고 싶은 사람들은 내 말에 귀기울여주며 이런 소통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러니 이건 나와 상대방 모두를 위한 길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라며 끝없이 자기 검열을 할 필요가 없다. 배려 없는 상대방을 욕할 필요도 없다. 어서 티브 하면 된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의 흐름과 덧붙일 부분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곧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출간 안내
아프리카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프로젝트를 포함해 "지속가능성"과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 <아프리카로 간 디자이너>를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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