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일상 (2)
나이지리아 출신 박사님 얘기다. 나와 함께 일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기에 말은 동료지만 사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 넘게 많은 분이다. 그리고 네 식구가 딸린 가장이니, 인생 선배님이시다. 이 분의 연구 분야는 광학으로 실험실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험하고, 논문을 분기별로 써내는, 말 그대로 척척박사님이시다. 그 분은 나이지리아, 나는 한국에서 온 외국인으로서 가끔 동질감을 느끼는, 꽤 가까운 사이다. 그런 이분이 내가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꼭 부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나미 플러스펜 한 박스다. 플러스펜의 부드러운 필기감을 좋아해서 한국에서 이만큼씩 쟁여오는데, 이 분이 한번 써보더니 플러스펜에 홀딱 반해버렸다. 처음 뜯어 촉의 날이 딱 서있을 때, 그때의 그 필기감은 다른 어떤 펜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극찬했다. 뭐, 한 박스라 해도 플러스 펜은 몇백 원씩에 부피도 작으니 부담 없었다. 매번 한 박스씩 인심 좋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 분의 플러스펜 한 박스는 늘 빨리 닳아버렸다. 내 인심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써버리고는, 혹시 더 없냐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도대체 뭘 했길래 그렇게 빨리 썼냐고, 어디 다른 데 준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분이 연구 노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 분이 늘 지니고 다녀 미팅할 때 자주 본, 낯익은 노트였다. 미팅할 때 메모나 간단한 필기 정도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분의 노트는 페이지마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대체 뭘 이렇게 쓴 거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논문을 노트에 쓴다고 했다. 보통 논문 초안을 잡을 때에는 노트에 수기로 쓰고, 이후 수정을 거쳐 컴퓨터로 옮긴다는 것이다. 자기 글씨로 되어 있어야 더 보기 편하기도 하고, 아이디어도 더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컴퓨터로 글 쓰는 것에 익숙한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종이에 글을 쓴 적은 거의 없었다. 편지 정도를 썼던 것 같다. 일기도 컴퓨터로 썼으니 말이다. 그런데 논문이라면,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려면 당연히 컴퓨터로 작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종이 위에 코멘트하고 수정하고 싶으면, 인쇄를 해서 보면 되는데! 그리고 나는 자동 문법 체크, 스펠링 체크도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편하고 쉬운 걸. 굳이 왜요?
반전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고 그분은 갑자기 내게 표지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래픽 디자인은 자신 없지만, 박사 논문 표지인 줄 알고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책이었다. 평소 자신의 신앙심과 깨달음을 담은 종교 서적이었다. 이미 자비를 들여 이런 책을 몇 편 냈고, 이제 막 신간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난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분이 원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아 결국 표지 디자인은 무산됐다. 하지만 그분의 엄청난 사생활을 엿보고 나니 새삼 신기했다. 그분은 하루 일과 중에 여유 시간이 없어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이 글 역시 노트에 수기로 한 챕터, 두 챕터 씩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초본이 완성된 후 컴퓨터로 옮기는 중이라고 했다.
노트에 보이는 수없이 고민한 흔적과 너덜너덜한 종이... 바깥은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시간에, 부스스 일어나 펜과 공책부터 찾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신앙심이라는 그분의 열정을 담아 써 내려간 글, 그리고 자비로 출판해 자랑스레 주변에 나눠주는 그분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분이 (아직)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어도, 현실은 본업에 지칠 대로 지친 직장인이어도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글쓰기 성공 스토리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분의 뿌듯함에 힘입어 내 의지도 다시금 불타올랐다. 괜스레 내가 게으르게 느껴진 건 덤이다. 그분의 플러스펜 사랑, 너덜너덜한 노트를 생각하며 나만의 스타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는 펜 대신에 컴퓨터를 켠다. 일단 새 문서를 열고, 뭐라도 끼적인다.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