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영화를 볼 때면 고개를 드는 못된 습관이 있다. 영화를 틀기도 전에 줄거리를 검색해 먼저 훑어본다. 대충 무슨 얘기인지,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혹시 반전은 있는지 찾아보고 나서야 영화를 본다. 스포일러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반대로 스포일러 대 환영이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관전 포인트까지 찾아야 영화 볼 준비가 끝난다. 창작자에 대한 예의에 한참 어긋났다는 걸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버릇이다.
이미 결말을 알면서 굳이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볼 필요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 이론은 이렇다. 영화에서 결말보다 중요한 건 영화의 서사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안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볼 필요가 없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쌓아 올리는 조각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모르고 보다간 내가 놓칠 만한 인물의 표정, 작은 복선이나 장치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혹시나 주인공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건 아닐까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된다 해도 다시 전화위복이 될 거란 걸 알면 한결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시간 러닝타임을 투자해 본 영화가 마음에 안 들면 그거야말로 아주 별로다. 그러니 스토리를 보고 이거 아니다 싶은 영화는 애초에 거르고 만다.
요즘 들어 시간을 돌려 5년 후, 10년 후의 나를 보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전지전능한 분이 계시다면 내게 굵직굵직한 스포일러 몇 개만 주실 순 없나요. 이야기 서사에서 지금 난 어디쯤 있는 걸까. 내 느낌 상 아직도 '발단'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반전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이 이야기의 결말이 무엇인지 알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영화의 끝은 정해져 있다. 내가 좋든 싫든 두 시간짜리 영화 속에 이미 모든 게 나와 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그 영화는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삶은 그렇지 않다. 아직 많은 부분이 열려 있다. 어떻게 진행될지, 그게 내 맘에 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다. 지금 내가 거쳐가는 과정보다 자꾸 결말을 생각하게 된다. 알고 보니 이거 비극, 혹은 지독한 염세주의면 어떡하지?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를 볼 때만이라도 내키는 대로 하고 만다. 맘껏 스포일러를 찾아보고 맘에 드는 결말만 골라낸다. 영화 밖의 나는 오늘을 살아야 하고, 오늘 내가 알 수 있는 건 오늘 하루뿐이다. 결말이 뭐가 될 진 모르지만, 애써 과정에 집중한다. 해피엔딩을 향해 간다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