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이 가져온 분란의 씨앗
9시 통행금지. 통금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네덜란드에서는 두 달 전부터 저녁 9시 - 새벽 4시 반까지 통금을 시작했다. 그전부터 식당, 카페, 술집 등은 이미 문을 닫았고 집에서 해 짧은 날의 기나긴 밤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통금을 추가로 한다고 해서 일상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사교, 여가 활동인 친구 집에 방문하는 것에 제동이 걸렸다. 9시 통금이라 함은 8시-8시 반에는 어디서든 집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통상 6-7시에 먹는 저녁을 4-5시에 먹어야 한다. 초저녁에 만나서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후딱 밥 먹고 돌아서야 하니 아쉬움이 더 크다. 여유 있게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씩 하는 게 그나마 낙이었는데 말이다. 오후 5-6시까지 다들 (집에서) 일하는 평일에는 약속을 잡기가 더 어렵다. 런치 + 디너를 합친 '딘치'라는 말을 올해 처음 들었는데, 내가 바로 딘치의 열혈팬이 되었다. 물론 더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친구들은 그냥 밤늦게까지 놀고, 하룻밤 친구 집 소파에 신세를 지고 다음날 아침에 부스스 집으로 향한다. 그런 걸 보면 통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소심한 불만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불만은 따로 있었다. 인권과 자유의 침해라며 일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다. 광장, 지하철 역, 번화가 등지에서 모여 평화 시위를 한다고 예고했고, 나름 저녁 9시 통금 전에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책임감 있는 (?) 모습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몇몇 도시에서는 폭동으로 번졌다. 무허가 시위이기에 경찰은 해산하려는 시도를 했고 시위대는 경찰에게 폭죽과 돌멩이를 던졌다고 한다. 1980년 이후 이런 폭동이 일어난 적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통금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네덜란드에겐 뼈아픈 역사인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에 있었던 통금 이후로 처음이라고 하니 '통금'이라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안 그래도 여러 락다운 조치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받는 다며 불만이 쌓이고 있었는데, 통금을 시작하고 벌금을 부과하자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에도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다. 자정이 되면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도심의 불이 꺼졌다. 1982년 1월 5일 자로 해지되었다고 하니 내가 태어나기 10년도 되기 전의 일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었을 통행금지다. 나는 통행금지 세대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규칙을 따르는 데에 더 익숙하다. 규칙이 있으면 따르고, 양자택일의 상황이라면 내 자율성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택하도록 교육받고 자라왔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그 반대의 상황이 더 익숙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는 당연한 인권과 자유를 지키려는 시도가 흙탕물을 일부러 만드는 미꾸라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통금은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법원에 고발한 단체도 있다 (Virus Truth라는 그룹이다). 인권 침해까지는 알겠는데, 추가로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보면 참 가당치 않다. 감염자를 치료할 수도 있는데, 정부에서 백신을 강요하고 있다, 아이들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는데 강제로 손을 씻게 하고 있다, 락다운으로 다른 병에 대한 면역력까지 떨어지고 있다, 언론이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1.5미터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으로 우리의 사회가 인간성을 잃어간다 등등..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마스크 논란, 마스크를 쓰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도 포함이다. 이런 근거도 빈약한,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는 주장들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퍼 나른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만큼 혼란은 가중되고 이런 주장이 실제로 먹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함께 살고, 함께 이겨내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이니... 진실은 무엇인지, 최선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네덜란드 고등 법원에서는 통금이 적용될 만큼 '아주 긴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통금에 대해서만큼은 위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다시 항소했고, 이번 달 말까지는 통금을 유지하고 있다. 통금이 있는 세상은 혼란스럽다. 이런 조치가 나올 수밖에 없고, 군말 없이 따르는 나도, 반발하는 폭도들도 모두 시민이다. 이 또한 역사의 한 순간이 되리라 믿으면서 오늘도 딘치를 준비한다. 딘치만이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오늘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