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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Jul 29. 2021

친구의 이직이라는 신포도

심란한 한 주였다. 시작은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이전에 함께 협력하던 비영리단체가 있는데, 그곳에 새로운 포지션의 공고가 떴다. 내가 한참 이직할 곳을 알아볼 때에는 없던 자리, 내가 정말 가고 싶던 자리였다. 그래서 공고를 봤을 때부터 참 심란했다. 프로젝트도 지금 하는 일보다 더 흥미롭게 들렸고, 사람들도 너무 좋은 곳이기에 이 기회를 넘기기에 아까웠다. 하지만 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었으니 또 회사를 옮길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지금 회사도 충분히 만족하며 다니고 있기에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공고에 관심이 있는데, 회사와 팀 분위기에 대해 묻고 싶다고 했다. 내 친구가 관심이 있다고 하니 나도 아는 대로 얘기도 해주고 인터뷰 준비도 도와주었다. 평소에도 이 분야와 회사에 관심이 큰 친구였기에, 나도 아낌없이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생각만큼 내 아량이 크지 않았다. 친구가 최종 인터뷰에 초대되자 난 급격하게 심란해졌다. 친구가 잘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가고 싶던 자리를 친구가 차지한다고 생각하니 못난 질투심이 고개를 들었다. 최종 인터뷰에서 꼭 합격하기를 응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진심으로 친구의 합격 소식을 축하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날 괴롭혔다.  


믿음은 있었다. 이번에 내가 친구를 도와주고 밀어준 만큼, 다음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친구도 나에게 아낌없이 지원사격을 할 것이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가 많아질수록 나에게도 소중한 인맥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친구가 이곳의 내부 소식에 대한 정보통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나도 진심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수 있었다.  


이번 주 초 친구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내 아쉬움이 섞인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기뻤다. 어찌 됐든 이전 회사에서 고생하던 친구에게 좋은 전환점이 된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도와준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었다. 연봉과 계약 조건을 건네받은 친구가 충격을 받아 연락해온 것이다. 제시된 연봉은 친구의 현재 회사에서 받는 액수는 물론, 업계 평균보다도 현저히 낮았다. 내부에 정해진 테이블에 맞추어 책정된 액수라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했다. 


난 다시 심란해졌다. 내가 친구의 입장이라면 저 자리에 기쁘게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원하는 곳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연봉'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한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않는가. (혼자 먹고살기엔 힘들 정도가 아니지만, 앞으로 가정도 꾸리고 싶고 돈도 모으고 싶은 내게는 적은 액수였다.) 만약 내가 다음번 이직을 준비하는데, 원하는 일이 이렇게나 박봉이라면... 이거 너무나 어려운 선택이다. 이런 게 어른의 삶이구나, 현실감각의 날이 선다. 내가 오퍼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내가 더 심각했다. 이 상황에 처한 게 내가 아니란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로. 


@Michael Burrows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이 어려워진다. 고려할 요소들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의 셈법에 더 밝아진다. 내가 가지 못한 길, 하지 않은 선택들에 늘 미련은 있다. 하지만 난 내가 한 선택들이 어느 정도 운명적이었을 거라는 낭만적이자 조금은 철없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내가 있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내린 선택들이 그때마다 최선이었다고, 지금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맞다고 믿으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아쉬움도 이런 고민의 무게를 내려놓자고 다짐한다.  


친구와 나 모두 아직 갈 길이 멀다. 시니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사회 초년생은 아닌 그 중간 단계에 있어 애매한 포지션이다. 지금 하는 일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소중한 경력이 되어 줄 테니 신중해야 하며, 박봉에 반발하며 좋은 조건을 요구하는 건 아직까진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음번엔 이런 양자택일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대우를 받으며 할 수 있도록 내 가치를 높이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계기가 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친구의 이직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은 씻은 듯 사라졌다. 돈이 뭐라고. 내 마음 참 가볍다.


@Karolina Grabow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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