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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Feb 22. 2021

떠나지 못한 여행에서 배운 한가지

- 시간이 지나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잡지에서 한 사진을 보았다. 오래된 마켓, 여기저기 쌓여있는 향신료, 오랜 역사가 묻어있는 낡은 건물과 골목길... 한 장에 꽉 차게 인쇄된 풍경은 너무나 이국적이었다. 다채로운 색감이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풍경, 빳빳한 종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마음을 빼앗겼다. 그 페이지를 뜯어내 방 벽에 붙여 두고, 언젠가 어른이 되면 가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그 사진은 어디로 치워버렸다. 그 풍경도, 내 바램도 오랫동안 기억 저 멀리로 비켜 있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겨울, 또 우연한 계기로 이 풍경을 다시 마주했다. 친구와 여행을 가려 계획을 하던 중이었다. 네덜란드의 길고 긴 겨울이 지겨워 그저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별 생각 없이 검색하다보니, 마침 모로코행 티켓이 세일 중이었다. 유럽에서 가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현지 체류비도 저렴할 것 같아 친구와 나, 둘 다 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페즈로 가는 티켓은 우리 돈으로 왕복 십만 원부터였다. 페즈라는 도시는 수도도 아니고, 아무래도 낯선 곳이라 구글에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검색창에 뜨는 사진들이, 웬걸, 아주 친숙했다. 내가 예전 방에 붙여 두었던 사진 속의 그 풍경들이었다. 이미지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너무나 신비로운 이 풍경을 직접 보러 갈 수 있다니, 막연하게 품고 있던 환상이 실현되는 느낌이었다. 친구도 마음에 든 데니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바로 목적지를 결정했다. 여행 계획을 짜며 한참 신이 났다.


그러던 중 변수가 생겼다. 원래는 같이 일하는 친구와 단둘이 떠나기로 했었는데, 마침 시간이 되는 다른 친구 두 명이 더 동참했다. 더 많이 갈수록 더 재밌을 테고, 이렇게 다 시간이 되는 것도 신기해 그저 좋았다. 그중 한 명이 데드라인이 있어 2월 중순부터 시간이 된다고 해 일정을 늦췄다. 그러다 다른 한 명이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새로 이직하는 회사의 출근 날이 정해지길 기다리느라 일정은 다시 조정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3월 둘째 주로 결정되었다. 그 후엔 티켓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모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2월이 왔다. 유럽에서도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1월에 중국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병했다는 뉴스가 나온 후, 2월엔 이미 한국에서도 확진자가 몇 명씩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직 긴가민가였다. 그러다 이탈리아에서 유럽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왔고, 3월에 들어서고 네덜란드도 시끄러워졌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건 확실했지만, 정부도 학교도 다들 우왕좌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와중에 여행 갈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던 우리도 참 철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네덜란드, 모로코는 공식적으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고,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전으로 갈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여행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여행 규제가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때까지는 항공사에서 따로 안내가 나온 것도 없고, 별다른 정부 지침도 없었다.  같이 가기로 한 넷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네덜란드 친구들은 정부에서 여행 경보가 나오지 않는 한 가고 싶어 했다.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면 환불하기 어렵다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였다. 중국, 한국의 뉴스를 더 가깝게 접한 나와 한국인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에 가는 것부터가 불안했다. 비행기표를 날리더라고 안가는게 날 것 같았다. 모두가 혼란스러웠지만, 그 누구도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비행기 날짜 일주일 전이되어서야 여행 경보가 내려졌다. 이젠 뭐, 우리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행기는 취소됐고, 티켓은 1년 안에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환불 조치가 되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와중에 티켓을 환불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땐, 곧 이 사태가 끝나 1년 안에 다시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확진자는 급속도로 늘었고, 2차, 3차 웨이브가 이어졌다. 뭐, 작년은 고사하고 올해도 전 세계가 여행은 꿈도 못 구게 되었으니 말 다했다.. (결국 여행사에서는 상품권을 현금으로 환불하는 추가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뉴 노말, 재택근무와 제한된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6월쯤,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뉴스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깜짝 놀랐다. 3월에 내려진 여행 경보로 모로코 항공사 비행기가 전부 취소되면서, 연 초에 모로코로 휴가를 보내러 갔던 유럽 관광객들이 아직까지도 발이 묶여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6월 이후에야 항공편이 편성되어 돌아올 길이 생긴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만일 우리의 여행 일정이 한주라도 더 빨랐다면, 이런저런 상황들로 일정이 조정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떠난 이후에 여행 경보가 내려졌더라면... 그래서 우리도 모로코 행 비행기에 일단 탔더라면... 나도 그곳에서 아직까지 발이 묶여있었던 건 아닐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낯선 호텔에서 몇 달치 방세를 내며 밖에 맘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 이주 일치 가져간 옷을 몇 달 동안 돌려 입고... 매일 눈 뜨면 비행기 편만 기다리는 날들... 그러다 현지에서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병원엔 갈 순 있었을까.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끔 이런 일들이 생긴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퍼즐이 맞춰진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내가 모르는 새에 다른 일들에도 영향을 끼친다.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따르는 영향이 생긴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인과 관계를 하나하나 따질 수도 없고, 그 배경을 딱히 설명할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이 생기곤 한다.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는 그 당장에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릴 때도, 나중에 보면 그게 꼭 내게 좋은 일만은 아닐 때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당황했다가도 그것으로 인해 좋은 기회가 생길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눈앞의 일들에 충실하는 것뿐이다.


모로코는 가지 못했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로 남겨둔다. 이렇게 뜸을 들이며 가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마침내 가게 된다면, 그땐 알게 될 것이다.


@ Anas Fakh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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