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였다.
14일을 아무것도 못하고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여놓은 침상에 누워만 있었다. 밥은 제시간에 나와 꾸역꾸역 먹었다. 조산기가 있는 산모들을 한 병실에 모아 사육했다. 정말 사육이 맞는 표현이다.
그렇게 사육당한 아내는 뒤에서 보면 임산부인지 잘 모를 정도로 잘 관리되어 날씬하던 몸을 잃고 말았다.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 것이다. 그럴 만한 게, 태동이 느껴지면 기계처럼 손에 쥐고 있는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미동도 못하고 누워서 식사만 했다. 그렇게 조산의 위기를 넘기고 출산일이 임박했지만, 이번엔 안 나오겠단다. 나오지 말아야 할 때 나오겠다고 엄마를 고생시키더니 나와야 할 땐 또 제 멋대로다.
입원실에서 아내보다 더 긴장한 채로 앉아 있었다. 유도제를 맞아도 정말 나올 생각이 없는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분만을 다음날로 미뤘다. 그날 저녁은 최후의 만찬을 즐기라 했다.
아내가 먹고 싶던 피자를 사 와 같이 티비를 보며 먹고 자려 누웠지만 우리는 한참을 잠에 들지 못했다.
내일이면 드디어 아이를 만난다는 떨리는 마음과 분만이라는 긴장감이 서로 다른 음역대로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갑자기 살려달라는 비명이 들렸다.
우리가 있던 입원실은 분만실 옆 방이라, 현장의 소리들은 벽하나를 넘어 우리의 상상력에 양분이 되었다.
한참을 살려달라고 소리치던 산모의 비명은 음소거가 되고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덩달아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이던 우리의 긴장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환희로 바뀌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죽여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선생님" 울며 외치던 산모의 절규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 살려달라는 산모와 죽여달라는 산모의 비명과 절규를 번갈아 들으며 잠을 설쳤다.
다음날 자연분만을 위해 여러 차례 유도제를 시도했지만 끝내 포기하고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아내는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고생 그만하고 수술하자는 설득을 여러 차례 해야 했다.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가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루가 태어난 것이다.
처음 본 하루의 모습은 외계인 같았다. 신생아실에 들어가서 정해진 시간에만 유리벽 너머로 볼 수 있어 흡사 동물원 같았다. 아내는 수술을 해서 움직이지 못해 혼자 아이를 보러 다녔다.
6월 꽤나 더운 초여름이었다. 병실 에어컨의 전원은 꺼져있었지만, 아내는 추워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마약 중독자처럼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피범벅이 된 침대를 수시로 갈아야 했다.
아내는 상처부위가 아파서 울지도 웃지도 걷지도 못했고 모자동실 시간, 아이가 찾아와도 제대로 안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날 아내는 엄마로서의 몫을 다 했구나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을 제 어미의 고통에서부터 태어나게 만든 창조주의 설계에는 오차가 없었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방식의 차이일 뿐 고통의 크기를 감히 저울 질 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항상 아기 같고 여리기만 하던 4살 연하인 나의 아내는 그날 내 영웅이 되었다.
제 새끼를 낳는 그날의 엄마들은 초인으로 거듭나는 것 같다.
Übermen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