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온 집에는 핏덩이를 안고 있는 좀비와 거울에 비친 영혼을 잃은 또 하나의 좀비가 있다.
언제 잤는지 무얼 먹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모든 게 처음인 초보 아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대기에 감싸진 폭탄을 옮겨 받고 내가 없는 전선을 지키느라 전력을 잃은 엄마에게 교대를 위한 인수인계를 받는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육아전쟁에서 살아남은 선배 전우들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육아 용품과 스마트폰 속의 어플들로 아이에게 제때에 밥을 못 먹이거나, 잠자고 깨어난 시간을 일일이 적어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더 좋아져도 육아가 안 힘들 수는 없다. 시대가 좋아져도 군생활은 여전히 힘든 것처럼.
우리는 참 미련했다.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음에도 무식하게 둘이서 했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산후도우미도 몰랐다. 그저 전우애로 똘똘 뭉쳐 둘이서 모든 걸 헤쳐나갔다.
그나마 나는 출퇴근 시간의 자유가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하는 시간 동안 육아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돌아와 교대 후 아이를 봐주는 시간에는 부족한 잠을 청하기 바빴다.
안 그래도 하얀 아내의 얼굴은 제대로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해 핏기를 잃어버려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속 샐리 같았다. 평소 멍 때리기를 좋아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멍을 때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초점이 흐려진 동공을 지나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영혼은 언제 나갔는지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사실 아내가 미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임신 때 늘어났던 축 처진 살 가죽들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모유수유로 인해 못 먹는 음식도 참 많았다. 젖을 물릴 때면 젖 속 모유만 빠는 것이 아니라 엄마 체내의 모든 수분을 빠는 듯이 입술이 건조하다 못해 갈라졌다. 임신 때부터 빠지던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수챗구멍을 막았다.
아내는 점점 우울증 환자처럼 변해갔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 내 낮에는 해가 없어. 밤에는 꿈꾸는 일도 없어. 이렇게 나도 없어지는 것 같아."
아내를 고등학생 때부터 봐왔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사귀기 시작해 지금까지 아내의 모든 모습을 봐왔다. 소녀와 여성으로의 아내의 모습은 지워져 가고 그저 제 새끼를 품는 어미로만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은 노래의 가사가 되었다.
There's no sun in my day
There's no dream in my night
Someday I'll find my everyday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되어 Pluto라는 이름이 지워졌다. 그리고 134340이란 번호만 남았다.
평생을 불려지던 이름은 지워지고 아이의 엄마로만 불려지는 아내가 명왕성 같았다.
심지어 아내의 부모인 장인어른 장모님도 이름이 아닌 '하루엄마'야 라고 부른다. 알 수 없는 이유지만 나는 그마저도 서운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의 연애시절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