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 03.

도전, 초단편 01

by 반디

국화꽃 앞에서 규원은 마치 사진 촬영이라도 하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규원의 표정과는 상반되게 주연과 화영은 지옥에라도 다녀온 듯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화영의 눈두덩이는 감은 듯 퉁퉁 부어 있었고, 주연의 낯빛은 이미 잿빛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비현실 같은 현실이었다. 금방이라도 사진 촬영을 마친 규원이 '엄마'하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신입생 환영회 뒤풀이까지 마치고 귀가하던 규원을 친 뺑소니범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CCTV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일이라 범인을 잡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경찰 답변이었다.

오열하는 화영을 감싸 안으며 주연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때 검은 정장을 입은, 파리한 얼굴을 한 사내가 들어와 규원의 영정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고 섰다. 무의식적으로 맞절을 하려던 주연과 사내의 눈빛이 순간 마주쳤다.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주연은 낯설지 않은 사내의 얼굴에 이끌리듯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팔뚝에 자꾸 소름이 돋았다. 사내는 국화꽃 한 송이를 규원의 영정사진 앞에 놓은 후 고개만 살짝 돌려 주연을 쳐다보았다. 한쪽 입고리만 살짝 올린 채 씩 웃더니 그대로 뒤돌아서 나갔다. 저주라도 걸린 듯 정지 상태로 있던 주연은 갑자기 저주가 풀린 것처럼 미친 듯이 사내를 뒤쫓았다.

"이것 보시오! 잠깐만 기다려!"

조문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연을 향했다. 불과 몇 분 상간이었지만 장례식장 어디에도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연은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게 서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놈이야! 맞아, 그놈이 틀림없어!"

"그런데... 그건 꿈이었는데... 분명 꿈이었는데... 어떻게..."


주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규원의 사고를 담당하고 있는 교통조사관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 생각에는 분명 그 놈입니다. 그놈이 우리 규원이를 죽였어요."

"음... 그 사람과 어떤 관계신가요? 혹시 원한 살 일이라도 있었는가요?"

"관계는 무슨! 그러니까 그게... 꿈에서 그 남자가 제 차를 대리 운전해 줬는데 내가 지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대리비를 주지 못했어요. 그랬더니 그 남자가 분명 저한테 대가를 받으러 오겠다고 했어요."

"아니면 어떤 미친놈이 상갓집에 와서 쳐 웃는답니까! 미친놈이 틀림없어요. 잡히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주연은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교통조사관은 난감한 표정으로 물 한잔을 주연에게 건네며 물었다.

"아버님, 방금 꿈에서 그 남자를 보셨다고 하셨는데 충격으로 다른 분과 착각하신 건 아닌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꿈에서 처음 봤던 사람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찮습니까?"

"맞다니까요! 꿈에서 봤던 그 놈이었어요. 그놈을 꼭 잡아야 합니다! 흑흑... 제발..."

주연 본인도 해당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눈으로 본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대강의 인상착의라도 말씀해 주시죠."

"그러니까... 키는 한 175 정도에 항상 검은 정장을 입고 다니고... 상고머리에... 얼굴에는 살이 없고..."

"너무 평범해서 그것 만으로는 찾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특징적인 게 있을까요?"

"만약 꿈과 동일한 인물이라면... 아까 대리운전기사라고 하셨는데 대리운전 번호는 혹시 기억하시고 계신가요?"

교통조사관은 조금의 단서라도 얻으려 주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주연은 마치 안갯속을 헤집듯이 사라져 가는 지난밤 꿈을 기억해 내려 안간힘을 썼다.

"번호는 기억나지 않는데... 술집이 있던 장소는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만... "

주연은 아차 싶었던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꿈에서 보았던 주점이 그 사내처럼 만약 현실 그대로 존재한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 같았다.

"경찰관님, 내가 일단 가보고 연락드릴게요!"

주연은 경찰서를 뛰쳐나와 황급히 용두산공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꿈속 주점의 위치를 다시 훑고 있었다. 제발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용두산공원 주차장에 대충 주차를 하고 공원 초입부터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오르막길에는 주점은 고사하고 다른 눈에 띄는 건물 하나 없었다.

'내가 장소를 착각했나? 아닌데... 분명 이 길이었던 것 같은데...'

부산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던 주연에게는 낯익은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생경하기만 했다. 지금은 꿈속과 같은 풍경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혹시라도 비슷한 장소가 있나 하고 주연은 공원 인근을 오르내리며 수차례 맴돌았다. 어둠이 내릴 때가 되어서야 공원 벤치에 허탈하게 풀썩 주저앉았다. '윤희'주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연은 마지막 실낱같은 끈마저 놓쳐버린 것 같아 맥이 풀렸다. 구름사이로 설핏 초승달이 드러났다 이내 사라졌다. 가로등 불빛이 주연의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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