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수줍음처럼 해질녘 연분홍 노을이 깔린다. 특별할 것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특별한 오늘이다.
평일 바쁜 일상에서는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던 청명한 가을 하늘, 묵은 비듬처럼 떨어지는 나뭇잎, 장르 불문으로 흐르는 음악, 여유가 더해진 차 한잔, 고요한 휴대폰, 적막감마저도.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유일하게 나를 돌아보고 쉼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전력질주하다 결승점에 겨우 닿은 것 같다. 가쁜 숨이 서서히 느려질 때쯤 달리기를 완주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처럼 팽팽했던 긴장감을 애써 놓아 본다. 조율하기 전 느슨해진 기타 줄처럼 나를 내버려 두고 싶다.
예전에는 불금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약속이 없는 날이면 하다못해 영화나 드라마라도 다음날 동틀 때까지 틀어서 보고는 했다. 그래야 힘들었던 한 주를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래야 주말의 달콤함을 분, 초 단위로 조금이라도 더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을 그저 그렇게 보낼 수 없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 갈 만한 곳을 찾아 일처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체력이 달리는지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이 없다. 눈은 갈수록 침침해지고, 글 몇 줄 읽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들기 일쑤다. 어제 읽었던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심히 불금을 이른 잠으로 보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래도 괜찮다. 주말에는 한껏 무거워진 육체를 굳이 일으켜 세우지 않아도 된다. 시간 맞춰 아침을 먹지 않아도 된다. 나를 돌아보지 못했듯 돌아보지 않았던 식물들에게 시원한 물 한 사발씩 후하게 대접한다. 커튼에 햇살을 받아 무늬처럼 일렁이는 관엽 식물들의 그림자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평소라면 한창 일할 시간대에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아 진한 믹스 커피를 마시며 일광욕을 즐긴다. 창 너머,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글을 쓰다가도 멈춰도 된다. 생각을 하다가도 멈춰도 된다. 잠들고 싶으면 잠들어도 된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월요일이면 다시 팽팽하게 줄을 당겨야 하기에 지금은 한소끔 쉬어 가자.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