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訃告)

떠날 준비

by 반디

거의 이틀 걸러 날아드는 부고 메시지.

같은 공간에 근무하지 않아도 동류의 기관들끼리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쉴 새 없이 부고 알림 메시지가 반짝인다. 어떤 때는 일이 바빠 별생각 없이 부의금을 부치고 나니 전혀 모르는 분인 경우도 있었다. 아차 싶었지만 돌려받을 수도 없고 그게 누가 되었든 가시는 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해마다 요즘 같은 환절기면 부쩍 부고 메시지가 잦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유명 연예인의 부고 소식도 알렸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싶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예전에는 별 감흥 없이 무심했던 부고 소식이 요즘은 누구 말마따나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을지, 부고 소식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생과 사를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궁금할 밖에.

죽을 때가 되면 살아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고 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스스로 잘 살아왔다는 만족감과 나의 죽음에 슬퍼해 줄 한 사람이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연상호감독의 드라마 '지옥'시리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었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지만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 수차례 곱씹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드라마처럼 나의 사망 일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여러분은 심경이 어떻겠는가?

마음이 여유로워질까? 아니면 더욱 초조해질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게다. 한창 불타오르던 열정이 찬물 끼얹듯 한순간에 사그라들 수도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삶의 끈을 먼저 놓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사후 세계에서조차 본인들 입지를 위해 더욱 종교에 몰입될 것도 같고, 또 어떤 이들은 남의 것을 뺏어서라도 남은 생을 누리려고 할지도 모른다. 몇몇 장면들만 떠올리면 혼돈이 따로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 버킷리스트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나의 죽음 전 삶을 주관할 수 있다는 것에 어쩌면 흡족해할지도 모른다.

버킷리스트 제일 상단에는 당연히 가장 소중한 것이 적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쌓고 지우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시간에 쫓겨 가지 못했던 여행을 밀린 숙제처럼 해치우고 지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마음을 비워내고서야 자신을 지워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반려견이나 반려식물을 정성껏 가꾸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찬찬히 삶의 기록을 적어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한 편의 시로 마침표를 찍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삶이 없듯 똑같은 죽음도 없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유튜브로 '에드 시런'의 노래를 듣다가 알고리즘으로 띄워준 '미 비포 유(me before you)'라는 영화의 짧은 장면들을 본 적이 있다.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건강한 육체와 경제력, 이목을 끄는 외모, 아름다운 연인 등 모든 것을 두루 갖춘 듯한 남자 주인공이 사고로 하루아침에 전신 마비가 되어 존엄사를 선택하는 줄거리였다.

생을 마무리할 시점에 우연찮게 찾아온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지만 이미 선택한 죽음을 끝내 감행하고야 만다. 영화를 온전히 보지는 않았지만 OST 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했다. 마치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된 양 제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선택의 기로에 선 남자 주인공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감정과 현실의 괴리감을 알기에 영화이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대로, 남은 사람은 남는 대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기에.

남편과 가끔 농담으로 주고받는다. 내가 먼저 죽으면 그래도 며칠은 슬퍼해 달라고.

어찌 며칠뿐이겠는가. 한 사람의 생이 짧든, 길든, 그 사람과 수십억 분의 일의 인연으로 만나 또 다른 내 삶의 일부가 된 사람이니 귀인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죽음을 알아달라고 반짝이는 부고 메시지가 유독 가을 낙엽처럼 쓸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떨어진 낙엽 자리에 새 생명이 움트듯 영면하신 분들도 그렇게 자연의 일부로 다시 되살아나실 것을 알기에 우리는 어쩌면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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