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

사선에서

by 반디

90년대 '유혹의 선'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었다. 제목만 보면 언뜻 야릇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으나 스릴러와 공포 장르의 중간쯤 되는 영화다. 5명의 의대생들이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본인들 스스로 피실험자가 되어 생사의 선을 넘나드는 줄거리이다. 생과 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주인공들이 가진 잠재된 트라우마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과거와 조우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트마우마를 극복해 나간다. 줄리아 로버츠, 케빈 베이컨 등의 화려한 배우진에 끌려 보게 되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날 정도로 꽤나 인상적이었다.

인류는, 우리는 늘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해 왔다. 산 자는 절대 가지 못하고, 죽은 자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고, 할 수 있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 현재 삶의 위안을 얻으려 한다.

종교에서는 대부분 현재 삶을 통해 사후의 삶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 같다. 때문에 사후의 삶을 위해 현재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삶과 죽음을 단절이 아닌 연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신론자이면서 종교에 무지한 나로서는 얼마나 영원한 삶을 원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수술실을 나오면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도 극심한 한기로 인해 이동 침대가 진동할 정도로 몸이 떨렸다. 특히 턱이 너무 심하게 떨려 위아래로 맞부딪히고 있던 이빨들이 모두 부서져 나갈 것만 같았다.

몸은 스스로 살기 위해, 열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내 몸과 의지가 마치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내 몸을 그때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육체가 가진 자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지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결국 육체의 형틀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의지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호접지몽', 가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혹시 사후세계나 꿈속의 가상세계가 아닐까 상상한다. 삶이 행복할 때면 현실이기를 바라고, 고통스러울 때면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실이 꿈이든, 꿈이 현실이든 어쨌든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죽음 이후의 삶이 어찌 되었든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나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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