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계
시계 바늘축과 같이 모든 세상사의 중심축은 '사랑'이 아닐까. 큰 녀석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연애를 한단다. 그런 아이들과 어른들의 사랑은 다를까?
감정적인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랑은 이성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자연스레 느끼는 무색무취한 감정이기에. 세월의 옷을 덧입힐수록 진한 사골 같은 사랑이 된다고 믿지만, 어떤 사랑은 그 세월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한눈에 반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어린놈의 쉐이들이 벌써부터...'라고 나 역시 말했었다. 눈치가 둔한 나보다 남편이 먼저 큰 녀석의 연애를 눈치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든 정황이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을.
한창 사춘기 때, 학교를 마치고 저녁만 먹으면 어디론가 살포시 사라지던 녀석. 친구가 줬다며 며칠 건너 뭔가를 들고 오던 녀석. 빼빼로데이 날 빼빼로보다 더 값비싼 아몬드초콜릿을 들고 오던 녀석.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도 그 친구가 '여자'친구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얘기할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었더니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본인도 알았던지 다 같이 저녁을 먹던 어느 날 녀석은 실토했다. 그것도 여태 한두 명이 아니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어린놈의 쉐이들이 벌써부터, 그것도 여러 명씩이나...'였다. 덧붙여 '그리 짧은 사랑이 무슨 사랑! 사랑도 모르는 쉐이들이...'라는 말까지. 물론 속마음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소낙비처럼 짧게 끝나는 사랑도, 번개처럼 찰나의 사랑도, 어린 사랑도 사랑이 맞는 것 같다.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조선시대로 치면 이미 결혼할 나이가 아닌가. 물론 그때보다 수명이 길어져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당시에는 어린아이 불장난 같았던 녀석들의 사랑이 정말 화재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했을 뿐, 그 감정 자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무런 조건도 따지지 않는 더 순수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과거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한창 탐독하던 시기, 나의 연애관은 '인연설'이었다.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에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주변 지인들의 소개팅이 들어오면 조심스레 거절하고는 했다. 내세울 것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만남이 싫었다. 내가 지켜본 세월만큼 자연스레 녹아든 사람이 아닌, 타인의 판단에 의해 억지로 끼워 맞춰지는 인연인 것만 같아서.
그랬던 연애관이 180도 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중매로 만나 1년 만에 결혼한 동아리 선배를 만나는 자리였다. 부부가 함께 나왔는데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대화를 하는 중에도 사랑이 가득하던 눈, 맑은 미소가 끊이지 않던 얼굴, 차 한잔을 앞에 두고도 서로를 배려하는 손,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여유, '행복해.'라는 부정할 수 없는 말까지. '행복'이란 단어를 넘어서는 '아름다움'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는 것도 그 자체로 인연일 수 있겠구나!'
지금 곁에 있는 남편도 그런 인연으로 만났다. 관건은 인연이 아닌, 결국 '사랑'이었다.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할 것인가. 인연으로 만나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인연을 사랑으로 만드는 데는 두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사랑에만 집착하며 머물러 있지 않도록,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면서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랑.
신파에나 나올법한 '사랑'타령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과연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랑을 벗어난 주제가 또 있을까? 오늘도 사랑 시계는 '사랑'을 중심축으로 이해와 포용이라는 바퀴가 맞물려 영원처럼 돌아가고 있다. 사랑이라는 배터리는 결코 닳지 않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