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왕라니 Sep 23. 2022

수학을 혐오한다고 말했던 그 아이

(feat.수학교사의 좌절)

중학교 1학년 수학수업을 한다. 세 반을 들어갔는데, 딱 한 명이 눈에 띈다. 수업시간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손으로 가위만 돌리고 있던 그 아이.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몇 번 이야기해도 또 다시 가위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 아이를 S라 칭하겠다.


학기 초에 학년부 선생님들과 밥을 먹었다. S는 내 눈에만 띈 것은 아니었다. 다른 교과목 시간에도 마찬가지라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상담을 해보니 아이가 일단 학습에 의욕이 없는 건 맞는데, 역사 과목은 좋아하는 편이고, 수학과목은 '혐오한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수학선생님인 나는 멈칫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수학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혐오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데. 얼마나 싫으면 그 정도일까 생각했다. 아마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올해 이 아이의 '수학에 대한 감정'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수학시간에 한 번이라도 이름을 불러주려고 했다. 뭐라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도 하고 질문도 했다.


한 번은 운동장에 있길래 "S야,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해서 같이 운동장 안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부터였던 것 같다. 수학시간에 가위돌리는 건 멈추었다. 그리고 엎드리는 시간보다 내 얼굴을 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심지어 "수학이 어렵다,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좋은 변화였다.


그러다가 5월 31일 3교시 수학수업 때였다. 방정식과 항등식에 대한 수업 중이었는데, S가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그런데 여기서 x가 뭐에요?". 수학을 혐오한다던 아이가, 수학책은 절대 펴지 않던 아이가, 수학시간에 우리가 공부하는 내용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준 다음, 반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말했다. "와~ 오늘이 5월 31일이지? 5월의 마지막 날에 이런 순간이 찾아오네! 우리 S가 수학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니!!" 하며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감격하긴 했지만. 그러자 반 아이들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해주었다. (이 순간이 그 아이에게 오래 저장되기를!)


하지만 궁금증은 생겼어도, 수학은 어려웠을 것이다. 해보려고 했고, 교무실에 찾아와 질문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뭔가 더 하려니 초등학생 때부터 연산이 되지 않은 상태라 꽉, 막힌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진짜 "공부를 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뚫을 수 있는 구간이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통계부분부터 시작해서 쉬웠다. 수업태도가 좋아졌다. 문제도 풀고, 나의 질문에 대답도 한다. 하지만 조금 더 내용이 어려워지자, 또 다시 엎드린다. S가 이해할 수 있게 매번 쉬운 내용만 다룰 수도 없고, 갑갑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9월이 되어 S의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학기에 바뀌신 선생님들께서 계속 S의 문제행동에 대해 지적하셔서 S에게도 말했거든요. 'S야, 교과선생님들한테서 계속 너의 행동에 대한 지적이 들어온다. 행동을 바꿔야 하지 않겠니.'하고 말이죠. 그랬더니 S의 제일 처음 질문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으셨다. 이어서 말씀하시길, S가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 수학선생님도 했어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데 뭔가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한 두개는 돋았는지도 모른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S는 나름 수학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미일거다. 내가 수학수업을 잘해서 그런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많은 선생님들께 지적을 받는 S는 뭔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지지해주는 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거다. 수학에 대한 혐오감이 수학선생님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으로 조금 상쇄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창 시절 6년 내내 수학을 만나게 되는데, 수학을 혐오한다면 이 아이의 학창시절이 더 힘들어질테니까.


담임선생님께 "그래서 뭐라고 말씀해주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수학선생님은 그런 말씀 안 하셨지."라고 하셨단다. "다행이네요. 제가 올해 S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S가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느낀 것 같아 좋네요. 남은 기간동안 더 애써봐야겠어요."

이전 09화 신규교사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