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의 삶을 유예하고 싶어 선택한 곳은 집 근처의 한적한 카페였습니다.
마땅히 갈 곳을 생각하느라 애쓰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라 더 걷다가는 이내 집이었을 터.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까지 걷다가 들어온 곳입니다.
그 마저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도를 느기며 아무도 없는 2층, 그리고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앉아봅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달콤한 휴식에 안도를 느기지만 한편으로는 집에서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
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마음 한구석 발걸음은 아직 서성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하루, 이틀…. 온통 시간을 가족들의 시간의 틈 사이로 녹여버린 날은 분노와 허무만 남았으면서,
그 시간에 한 조각을 나에게 떼어 주는 일에 너무 인색하고 미숙한 나를 위해,
과감히 이름도 처음 들어본 ‘피치 애플티’를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내 처음 카페를 찾아 어지럽던, 갈피를 잃은 시선도 온전히 창 밖 풍경의 평화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면서 오늘 이 잠깐의 시간이 어쩌면 시작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작디작은 유예의 시간에 더 이상 죄스러움도, 위축됨도 없이 그냥 머물다 가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이곳으로 올 때까지 타인과 나 사이의 치밀하고도 농밀한 불행과 행복의 간극에서
얼마간 나를 ‘유예’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