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나는 우리 반 아이
오늘 우리 반 아이의 학업중단숙려제가 시작되었다.
학업중단숙려제는
학업중단 위기에 처한 학생에게 연 최대 7주까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학업중단에 대한 숙고를 하게 함으로써
학업중단을 예방하는 제도이다.
여러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지만
우리 반 아이는 원래의 취지대로 자퇴를 앞두고, 고민의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는 자퇴를 굳게 마음먹었으나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갑작스레 자퇴를 하겠다는 아이에 대한
학부모님의 마지막 보루였다.
우리 반 아이가 자퇴를 하려는 이유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가기에는
모자란 고등학교 내신을
검정고시 내신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이는 자퇴를 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숙려제 시작 전날
본인의 책상 서랍과 사물함 속의
책 등을 모두 꽁꽁 싸들고 교문을 나섰다.
학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아마도 아이는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 어렵지 않을까.
아이를 응원하는 마음 반, 염려하는 마음 반으로
학교를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 아이의 고민은 1학년 때부터였다.
중학교에서는 공부를 곧잘 했던 것 같다.
학원도 다니지 않았지만 시험 성적이 잘 나왔고
학교에서도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로 인정을 받았다.
고등학교 진학 후 치른 첫 중간고사.
중학교 때처럼 준비했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충격을 받고 부랴부랴 학원도 다니고
지금까지 공부량도 늘려왔지만
중학교에서의 자리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교를 떠날 궁리를 마음 한 켠으로 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내게 와서 자퇴와 학업중단숙려제 이야기를 꺼낼 때
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아이가 흘린 눈물 속에는
학원을 권하지 않고 공부하라 간섭도 하지 않았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묻어났다.
학부모님 특히, 어머님은 아이의 자퇴를 반대했다.
하지만 부모탓이라도 해야
자신의 상황을 위안할 수 있는 아이의 속내를
어머님도 알기에 아이의 자퇴 결정을 단호하게 막지 못하고
학업중단숙려제라는 카드를 내미신 것일 테다.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사실 이런 아이가 많다.
보통 중학교 6~70퍼센트의 아이들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정원의 4~11%밖에 되지 않는
1~2등급의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니
상위권 아이는 더 소수가 되고 그 외의 아이들은 더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학부모님들도
자신이, 자신의 자녀가 상위권에서 밀려난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의 중학교 성적을 이야기하며 눈물짓고,
학부모님들은 중학교 때 더 많이 시키지 않은 자신을 탓하거나,
더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를 탓한다.
고등학교 공부와 중학교 공부의 차이
중학교 공부와 고등학교 공부는 차원이 다르다.
난이도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양의 차이가 엄청나다.
보통의 중학교 내신 공부는 평소 하루에 한두 시간씩 공부하고
시험기간 2~3주 바짝 하면 시험 점수 잘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절대평가이니 적당히 잘하면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보통의 고등학교조차도
평소 하루 한두 시간씩으로는 택도 없는 양이다.
개인적으로 상위권 자리를 유지하려면 수업, 인강 등을 듣는 시간 외에
하루 4시간 이상 자기 공부를 해야 학교 진도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만 따라가면 되는 것도 아니다.
수능을 위한 공부도 따로 해야 하고,
교과목마다 실시되는 수행평가도 말 그대로 다 수행해 내어야 한다.
게다가 상대평가이니 등급을 갈라야 하는 교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 난이도를 올릴 수밖에 없다.
( 학교에서 아이들이 버텨내기가 갈수록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중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양치기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중학교 때는....' 하며 추억 돌리기만 한다.
고등학교 성적은 자본주의의 돈과 매우 닮았다.
어른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고 외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한 시간도 노력도 쏟아붓지 않는다.
하루하루 직장과 집을 오가기 바쁘고
시간이 날 때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절약을 해도 모자랄 판에 소비할 것을 찾는다.
그리고는 좋은 주식, 좋은 아파트를 찍어주길 바란다.
아이들도 똑같다.
공부 잘하고 싶다, 좋은 대학 가고 싶다 외치지만
정작 그에 상응하는 시간과 노력을 쏟는 아이는 드물다.
학교, 학원, 집을 바쁘게 오가지만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아이패드를 열어
유튜브 보고, 게임하기에 바쁘다.
그리고는 1타 강사의 강의를 들은 것으로 공부한 보람을 느낀다.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
중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다가
고등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있다.
현재 우리 학교 1등도 그런 케이스.
이 1등 아이는
중학교에서 시험 성적 잘 받겠다고
벼락치기 같은 거 안 했을 거다.
고등학교와 대입 수능을 목표로 잡고
자신의 공부를 장거리 마라톤으로 여기고
국영수 기본 실력을 쌓기 위한 공부를 꾸준히 해왔을 것이다.
고등학교 공부를 잘하려면
일단 시간을 들여 공부의 '양'을 쌓아야 한다.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하고는 그다음 문제다.
학교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도 장황하게 늘어놓지만
사실 내 코가 석자다.
우리 집 7살 아이도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에게 이것 하나만은 늘 이야기한다.
"많이 하면 잘해.
꾸준함이 재능이야.
꾸준함은 특별함을 이겨.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거북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