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8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이 많지 않아도 우리는 자기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중략) 이처럼 ‘뒤틀린’ 사회구조 내부로부터 젊은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기묘한’ 안정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70.7%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위 내용은 어떤 책에서 인용한 글인데요, 혹시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한번 찾아보시죠. 아마 눈썰미 빠르신 분들은 눈치 채셨을텐데요, 윗 글은 한국 이야기가 아닌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만26세 때 쓴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 등장하는 글입니다. 다음 글도 이어 읽어 보시죠.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사회학적 시대 진단은 간단하다. 첫째, 일본 사회는 절망적이다. 둘째, 일본 사회에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인과 관계로 엮여 있다. 즉, 절망적인 사회 덕택에 개인이 행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략) 그가 발견한 젊은이들의 ‘행복’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쉽게 말해,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다.- 오찬호 박사 해제 중에서 -
충격적이지 않나요? 전 윗 글을 읽으며 한참 생각에 빠졌었습니다.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혹은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니... 일반적으로 우리는 현재보다 나아질 미래를 기대하며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죠. 그리고 조금씩 개선되는 현재를 보며 다시 힘을 얻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 또한 찾습니다. 만약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나 바램이 없다면 우리의 현재는 모래 위에 쌓은 집처럼 허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가 주장한 내용들은 그저 일본에 국한된 것일까요?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경제적 행복 추이와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20대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9.2%로 10%(체감 실업률은 약 12%)에 육박하고 있으며, 실제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수를 나타내는 20대 고용율은 50% 중반에 그치고 있어 5명 중 채 3명도 취직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앞날이 깜깜한거죠. 그럼에도 20대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48.9로, 전체평균인 44.9는 물론이고 다른 세대보다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40대의 40.9(이는 자식걱정, 노후걱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와는 꽤 큰 격차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볼까요? 20대 젊은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죠. 다시 노리토시의 주장을 들어볼까요? 그는 행복의 조건을 ‘경제적인 문제’와 ‘승인의 문제’, 2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2가지가 만족될 경우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라 판단하는데, 여기서는 ‘경제적인 문제’만 이야기해 보죠. 그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결코 빈곤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보다는 직장에 들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집도 장만하려는 계획을 가진 30~40대 계층의 사람들이 더 빈곤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주장합니다. 이들에게는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매우 부담스럽지만, 필연적이어야 할 미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
노리토시는 20대 젊은이들의 경제 생활이 과히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단 부모의 집에서 계속 머물 수 있다면 먹고 자는 것은 해결되겠죠. 그리고 고정적 월급이 나오는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면 경제적으로 궁핍할 이유가 전혀 없고요. 여기에 미래까지 생각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결혼, 출산, 육아, 집 마련 등등을 포기한다면 현재는 나름 즐기며 살 수 있는 시간들로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의 증가, 집 구입보다 자동차나 취미 생활을 더 중요시하는 젊은 부부들, 결혼을 더 이상 필수사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독신 등은 이러한 트렌드가 결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죠.
“미래를 포기할 때 현재가 행복해진다.” 참 우울한 명제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분명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20대들처럼 30대 이상의 세대들도 미래를 잊고 현재에만 집중해야 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미래는 미래로 존재할 때 미래로써 가치가 있으며, 삶 또한 현재보다 나아질 희망이 있을 때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미래는 희망의 한 보루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보는거죠. 다만 미래만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현재를 즐기며(Carpe diem), 이 행복한 현재를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것이 정답이라 믿습니다. 솔직히 아직 구체적 대안은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치듯, 분명 각자에 맞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