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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22. 2015

외환위기, 그때 그랬더라면...

균형 찾기 #9

1997년 12월 3일과 2001년 8월 23일, 그리고 195억달러.


위의 날짜와 금액은 우리가 흔히 ‘IMF 사태’라고 부르는 ‘외환위기’와 관련된 숫자들입니다. 1997년 12월 3일, 당시 김영삼 정부는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195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작성했고, 그 이후 대기업, 중소기업들의 연쇄적 도산, 엄청난 실업, 금리인상, 주식시장 및 부동산 등 자산의 폭락, 최악의 경기침체 등 수많은 고통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단합과 뼈를 깍는듯한 노력으로 2년 후부터는 서서히 수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01년 8월 23일, 195억달러 전액을 상환함으로써 외환위기는 종결되었습니다.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들


1997년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18년 전의 일입니다. 꽤나 오래된 이야기이며, 이제는 역사 속에 묻혀진 사건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법정관리,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환위기때 비로소 생겨난 것이며,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비상식적이며, 매우 강압적 요구에 의해 생겨났음을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시 당시 상황을 잠시 되짚어보겠습니다.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인해 800원 후반대이던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무려 2배가 넘는 2,000원대까지 치솟았고, 양호했던 국가신용도는 절대 투자해서는 안되는 정크(쓰레기) 등급까지 떨어졌으며,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에 열심히 외화를 대출해주었던 미국 등의 국가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동시에 ‘내 돈 내놔라!’며 아귀처럼 달려들게 됩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으로 몰리자, 기업 운영상 문제가 있던 한보, 삼미, 대우, 진로, 한라, 대농, 쌍방울, 해태 등과 같은 많은 대기업들이 버티지 못한 채 줄줄이 추풍낙엽처럼 줄도산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죠.



왜 IMF는 '긴축'을 요구했을까?


경제사(經濟史) 관점에서 외환위기는 그저 스쳐가는 아픈 기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판도를 일순간에 180도 뒤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급한 자금을 대출해 준 IMF의 역할이 지대했다 할 수 있습니다.당시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사실 말도 되지않는 사항들을 요구했고, 정부에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의 요구를 따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그렇다면 왜 IMF는 그러한 강압적 요구를 했을까요? 대한민국의 허약한 경제체질을 아주 강인하게 바꿔주려 그랬던걸까요?


당시 IMF에서 대한민국에 요구한 사안들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많고 복잡하지만, 곁가지 다 제거하고 제일 중요한 키워드 하나만 뽑는다면,바로 ‘긴축(緊縮)’이란 단어 하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IMF는 대출에 대한 조건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긴축을 요구했습니다.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재정과 금융에 대한 긴축이 우선이며, 더불어 고금리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물론 정부에서는 그대로 따랐고요. 긴축이 뭘까요? 기존보다 바짝 줄이거나 조이는 것, 즉 지출을 빡세게 줄이는 것을 의미하죠. 자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왜 그들은 우리에게 긴축을 요구했을까요? 쉽게 풀어보자면, 그들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 IMF : “너희들 달러가 없어 이 모양 요 꼴이 된거지?”

- YS정부 : “응.”

- IMF : “그러면 달러 사모아야겠네?”

- YS정부 : “응.”

- IMF : “달러는 원화로 사야되겠지? 근데 환율이 엄청 올랐으니 원화가 엄청 많이 필요할테고, 그러려면 이제부터라도 허리띠 꽉 졸라매고 살아야겠네?”

- YS정부 : “..... 응, 그래그래. 듣고보니 니 말이 맞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도 ‘아, 맞네~’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계신건 아니겠죠? 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죠.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시행한 정책이 무엇이었을까요? 긴축이었을까요? 노, 노, 노,절대 아닙니다. 긴축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유동성 확대정책(QE[Quantitative Easing, 양적완화])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댔고, 그 돈으로 미국의 AIG나 Citi와 같은 거대 금융회사를 살려냈죠. 돈은 경제의 윤활유이기도 하지만, 혈액으로써의 역할이 더 큽니다. 만약 어떤 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어 피가 모자르게 되면, 수혈을 해야만 하겠죠. 경제 또한 상처를 입으면 수혈을 해야 합니다. 뭘로? 돈으로요. 글로벌 금융위기란 큰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그들은 엄청난 돈으로 수혈을 한 겁니다. 안 그러면 경제가 죽을 수 있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IMF는 왜 양적완화 정책이 아닌 긴축정책을 대한민국에 요구했을까요? 그 대답을 드리기 전에 조금 더 IMF의 요구사항을 훑고 가죠. 그들은 ‘긴축’과 더불어 금융권과 기업의 구조조정, 자본시장의 개방 그리고 노동시장의 규제완화까지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로 동화,동남, 대동, 경기, 충청, 강원, 상업, 한일, 보람, 제일은행 등 많은 은행들이 통합되며 사라졌고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외국자본이 물밀 듯 들어오며 삼성전자, 포스코, KT&G, LG, SK,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등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의 지분은 물론 폭락한 각종 요지의 부동산, 빌딩들까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쇼핑잔치를 벌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노동법까지 건드림으로써 기업들이 필요하다 여긴다면 언제든 구조조정은 물론 직원에 대한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그 제한을 완화시켜 놓았으며, 파견근로제라는 것을 만듬으로써 비정규직이란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키게 되었죠.


이처럼 외환위기는 IMF의 구제금융으로 인해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이 외국자본에 의해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고, 실제로도 이 시기를 통해 건너온 외국자본들은 대한민국의 대기업, 은행, 부동산, 빌딩 등 다양한 자산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싹쓸이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또한 외국에 대한 무역ㆍ금융ㆍ자본 자유화 및 노동시장 개방으로 인해 그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대한민국 경제는 마치 촛불이 작은 미풍에도 심하게 흔들리듯, 언제든 외국자본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즉 대한민국 경제체질이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우리가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잘 알지도 모르는 눈깜짝할 새에 시대가 변해버렸던거죠. 만약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긴축이 아닌, 돈을 푸는 유동성 정책을 폈더라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IMF 사태’, 그리고 지금의 경제환경, 개인들의 삶은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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