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를 공학으로 만든 금융시장의 총아, 파생상품
세상에는 수많은 금융상품이 있습니다. 초딩들도 알고 있는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적금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식, 채권, 펀드, 보험, MMT, MMF, CMA, ELS, DLS, ELW, ETF 등등. 꽤 많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건 그저 빙산의 꼭지에 불과하다는 사실!
사실 채권 하나만 하더라도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채권들이 존재하죠. 발행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에서 발행하면 국채, 대한주택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면 공사채, 은행이라면 은행채, 회사라면 회사채 등. 기간에 따라서는 1년, 3년, 5년, 10년 심지어는 20년, 30년도 가능하죠. 또한 발행시기에 따라서 발행금리(표면금리)가 달라질 뿐 아니라, 발행주체의 신용도에 따라서도 금리가 천차만별입니다. 아무래도 국가의 신용도가 제일 높으니 국채의 금리가 제일 낮고, 공사채, 은행채 그리고 회사채의 순으로 금리가 높아지게 되죠. 어떤가요, 꽤 복잡하죠?
펀드는 더 어마어마합니다. 혹시 금융시장에 나와있는 펀드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5년 4월 기준으로 전체 펀드수는 무려 1만 2,293개나 된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허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작년 출시된 펀드수만 6,046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수치도 14년의 6,759개보다 10%가량 줄어든 것이라 하니, 매년 엄청난 수의 펀드가 출시되고 또한 상당수의 펀드가 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금융시장은 시스템으로만 운영되는 상상의 세계다
여기까지도 약과라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전세계적으로 금융상품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궁금하긴 하지만 자료 찾기가 쉽진 않네요. 물론 금융상품 숫자도 의미있겠지만, 사실 금융상품은 한계가 없다고 보시는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금융시장은 돈이 돈을 벌어야 하는, 한마디로 돈을 벌기위해서는 어떠한 상품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장이며, 실물이 없이 시스템으로만 운영되는 상상계(想像界, Imaginary World)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돈, 돈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움직이는 돈은 엄밀히 말해 돈이 아니라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죠. 요즘 어느 누가 현금으로 몇 백, 몇 천만원씩 들고 금융상품 가입하러 가나요? 아니죠. 그저 통장에 들어있는 자신의 숫자를 다른 상품의 숫자로 대체할 뿐이죠. 그러면서 바라는 것은, 그 숫자가 새끼(이자)를 많이 쳐서 더 불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가 투자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금융시장은 실제적으로는 숫자에 의해 움직이며, 숫자가 모든 것으로 대변되는 세계라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입니다.
금융상품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돈(숫자)을 끌어들여야만 수수료와 같은 지속적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유사한 상품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자금을 끌어들이기 어려우니까요. 이런 힘든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이 바로 파생상품(Derivatives)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이 파생상품은 현대 금융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요. 산수, 더 나아가 수학을 공학으로 만든 개념이라 보면 적당할 듯 싶은데요, 먼저 정의부터 알아보죠. 파생상품이란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으로, 상품 가치가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으로부터 파생되어 결정되기 때문에 ‘파생상품’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의부터 만만치 않죠? 조금 쉽게 풀어보죠. 파생이란 어원부터 알아보면, ‘파생(派生)’이란 사물이 어떤 근원으로부터 갈려 나와 생긴 것을 말하는데요, 즉 가장 기초적인 금융상품으로부터 가지치기 되어 나온 상품을 파생상품이라 보시면 됩니다.
기초적인 금융상품으로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은행의 예금, 적금 그리고 대출상품들이 있습니다. 또한 주식이나 채권도 포함할 수 있고요. 이런 기초상품에 변형을 가해 마치 새로운 상품인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파생상품입니다. 지난 칼럼인 'ELS 투자자들의 한숨이 깊어가는 이유(https://brunch.co.kr/@bang1999/102)'에서 ELS(주가연계증권)에 대해 말씀드렸었는데요, ELS가 바로 파생상품의 한 종류입니다. 즉 주식의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그 변동에 따라 가격이 변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못해도 ELS의 수만 1,000개는 족히 넘을 겁니다. 주가만 기초자산으로 할 필요는 없겠죠? 금, 은, 비철금속, 원유, 각종 곡물류의 가격 등도 기초자산으로 하여 상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환율, 금리, 선물지수, 신용도, 거기에 더해 날씨까지 가격이나 수치가 변동되는 모든 것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이런 상품은 DLS(파생결합증권, Derivative Linked Securities)라 부르죠.
자, 이런 파생상품들은 솔직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상품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일반 금융상품을 한, 두 번 이상 꼬고 비틀어 만든(좀 있어 보이려면 콜옵션 매수/매도, 풋옵션 매수/매도를 활용한다고 말하죠)상품이기 때문이죠. 또한 이런 파생상품으로 일반인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금융상품보다 높은 수익률로 유인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주머니 돈을 털어서라도 가입할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파생상품의 비밀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두 눈 크게 뜨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설명드린 ELS 상품(윗 그림 참조)은 홍콩H지수와 코스피200지수 모두 가입시점 대비 60%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31.2%의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홍콩H지수가 반토막나며 녹인(Knock In)지점을 터치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가입시점 대비 85% 이상되어야만 해당 수익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여기서 한번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두 지수가 3년 내내 60%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그 언저리(예를 들어 65~80% 수준)에서 움직이다 만기를 맞이했다고요. 그럴 경우 ELS를 판매한 증권사에서는 모든 고객에게 31.2%의 이자를 지급해야만 합니다. 당연한거겠죠?
자 그렇다면 증권사(정확히는 자산운용사라 보시는게 맞습니다. 대개 증권사는 상품 판매만 담당하기 때문이죠)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 이자를 마련할까요? 요즘과 같은 완전 저금리 시대에 어떻게 30%가 넘는 수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걸까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상품을 판매한 후 그 상품에 대해 헷지(Hedge)란 것을 해 놓습니다. 헷지란 한마디로 리스크를 회피할 목적으로 서로 상쇄되는 거래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친구들과 월드컵 축구 내기를 합니다. 대한민국 VS 스페인인데, 저는 대한민국의 승리에 만원을 걸었습니다. 이 경우 이기면 만원을 벌지만, 지면 만원을 잃게 되죠. 이때 만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헷지를 하면 됩니다. 반대의 경우, 즉 스페인의 승리에도 만원을 걸어놓으면 이기든, 지든 리스크는 헷지가 되는겁니다. 이해되시죠? 증권사가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리스크를 헷지함으로써 증권사에서는 상품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헷지도 2가지의 이유에서 100% 완벽하게 하기는 어려운데요, 하나는 헷지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잡한 상품 구조에 딱 맞는 헷지를 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사에서는 100% 헷지가 아닌 상품이나 주식시장 등의 변화에 맞춰 70~90% 수준의 헷지만을 하는겁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증권사 입장에서도 약 10~30% 수준은 리스크를 안고가는거고요. 증권사에서 헷지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잘 했다면 만기시 고객에서 31.2%의 고수익을 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조금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건 바로 증권사의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손실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태에서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홍콩H지수가 급락하여 60% 밑으로 터치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럴 경우 증권사 입장에서는 수익보장을 해줄 의무가 없어지고, 손실은 고스란히 고객이 떠안게 될테니까요. 물론 절대 그럴리는 없겠지요? 그쵸?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수는 아니지만 개별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경우, 만기일 전에 증권사가 해당 주식을 대량 매도, 일부러(?)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써 고객에게 손실을 안도록 한 일이 몇 번 있었죠. 큰 손실을 본 고객 몇 명은 해당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요. 참 나쁘죠? 하지만 증권사에서는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에 따른 헷지(유식한 말로 ‘델타헤지’라 하죠)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액션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헷지는 자금운용상 많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게 사실이긴 합니다.
어찌보면 파생상품은 금융 자본주의 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형, 변조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또한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최근 파생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주로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 합니다. 통계와 확률 그리고 수많은 조건들을 계산하여 상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파생상품들은 이미 우리의 곁에 다가와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높은 수익률을 주겠다며 말이죠. 사실 제대로 된 투자를 위해서는 이런 파생상품의 구조나 특징, 장단점까지도 제대로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확실한 투자를 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토록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파생상품들을 과연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끝이 없을 것 같지 않나요?
금융상품, 특히 파생상품에 대한 공부는 각자 판단에 따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해야 하겠습니다. 높은 수익률을 이야기하는 상품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와 상반되는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그 리스크를 모른 채 투자해 손실을 봤다 할지라도 그 손실은 본인 책임이 된다는 것도요. 그러니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파생상품에 대해 잘 모르겠다 싶으면 아예 투자할 생각조차 하지 마시라고요. 묻지마 투자가 한두번 성공한다 할지라도, 나중에 크게 한번 깨지게 되면 그 손실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테니까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2008년 세계를 금융위기의 공포에 빠뜨렸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CMO(부채담보부증권,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란 상품 또한, 가장 낮은 등급의 서브 프라임 대출을 활용하여 만든 파생상품이었다는 사실,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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