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서 에곤 실레를 만나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그림 두편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자화상>, 1912년. Egon Schiele 作
<포옹, The Embrace>, 1917년. Egon Schiele 作
강렬한 선과 표정. 거침없는 터치.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입니다. 그는 19세기 말인 1890년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어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반항적인 성격은 이내 정규적 교육을 포기하게 만들었죠. 그는 동료들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자율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1907년, 황금빛 장식 물결의 향연 <키스>란 작품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눈에 띄며 그와 평생 친구이자 동료, 멘토로써 지내게 됩니다. 무려 32살의 달하는 나이차도 그들에겐 별 장벽이 되지 않았죠. 클림트와의 친분이 실레의 초기 작품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곧 실레는 자신 만의 작품을 창작해 내기 시작합니다.
지난 5월말 짧은 일정으로 체코와 오스트리아에 다녀왔습니다. 업무 출장은 아니었고, 좋은 기회가 생겨 모처럼의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낼 수 있었죠.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묵었는데, 일행과의 다른 일정이 있었지만 오전 시간만큼은 양해를 구한 후 벨베데레 궁전 안에 위치한 비엔나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까지 온 김에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대표작 <키스>만큼은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키스>, 1908년. Gustav Klimt 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비너스> 상과 <모나리자> 작품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듯 <키스>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감상하고 있더군요. 저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하지만 웬지 그 감동은 조금 약했습니다. ‘아, 좋구나. 멋지구나. 대단하구나!’란 느낌 정도였죠. 진짜 감동은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클림트 전시실을 지나자 에곤 실레의 전시실이 있지 뭡니까!
제가 에곤 실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6년 전 구로이 센지가 쓴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부터였죠. 워낙 작품들이 강렬하다보니 그 눈빛, 포즈, 색채, 선, 감정 등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 근대화가 이중섭이 40세의 짧고 안타까운 생애를 살다간 것처럼, 실레 또한 아니, 실레는 그보다도 짧은 28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계속해 머리 속에 남았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오스트리아 미술관에서 마주치게 된 에곤 실레의 그림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8년 전 책을 통해 접했던 그의 이야기들이 그림을 통해 제게 말을 걸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죽음과 여인(Death and the Woman, 1915년)>, <포옹(Embrace, 1917년)>, <앉아 있는 에디트 실레의 초상(1918년)>, <어머니와 두 아이들(1917년)>, <창문들(Windows, 1914년> 등의 작품들이 제 눈은 물론이고 가슴을 거쳐 온 몸까지 짜르르 훑어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신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작품. 아, 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만 할까요.
<가족>, 1819년, Egon Schiele 作
1915년 에곤 실레는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각종 전시회에서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에게 더 기쁜 소식은 바로 아내 에디트의 임신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가족>을 그립니다.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의 저자 구로이 센지가 “이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실레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사실이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가족이 등장하는 작품은 이것이 유일무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실레에게 가족이 주는 의미는 그 무엇보다 컸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유럽에 스페인 독감이 밀물처럼 퍼지고, 아내 또한 독감에 걸리며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 젊은 아빠의 희망과 기대는 무참히 꺽이고 만다. 1918년 10월 28일 임신 6개월의 아내 에디트가 사망했고, 사흘 뒤 에곤 실레 역시 목숨을 잃었다. 새로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실레가 그린 그림 <가족>은 이루지 못한 꿈의 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 <시대를 홈친 미술>, 이진숙 --
자세히 보면 이 <가족>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시선 또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죠. 아마도 이는 <가족>에 대한 부담감, 즉 가장으로써 태어날 아이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이 작품에 투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레의 표정과 오른팔의 움직임은 무언지 모를 자신감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부푼 기대와 희망이라고 할까요.
“나는 인간이다. 나는 죽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천재화가 에곤 실레. 우연히 만난 그의 작품 <가족>을 보며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 중요성 그리고 위대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 비엔나에서의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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